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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024 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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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Sep 22. 2024

비 그친 뒤 산중에서
두꺼비를 만나다.

雨後山行中蟾公遭遇 (우후산행중섬공조우)

비 그친 뒤 산중에서 두꺼비를 만나다.


難巽寧勝荒 (난손녕승황) 부드럽기 어려우면 차리리 거칠고, 

數窮不如默 (삭궁불여묵) 자주 막히느니 차라리 침묵하라.

誤落塵網中 (오락진망중) 어쩌다가 속세에 있으나,

守拙歸當風*(수졸귀당풍) 서투름을 지키며 당당히 돌아가리.


2024년 9월 22일 오전, 산행 중에 우연히 두꺼비를 만났다. 산길에서 만난 公의 등은 거칠었고 아무 말 없이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마치 이 말 저 말로 시끄러운 세상에 침묵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세상 만물이 모두 선지식이듯 두꺼비도 선지식이다. 선지식善知識의 본래 의미는 ‘참된 벗’이다. 산스크리트로는 Kalyāṇa-mittatā, 즉 ‘좋은 친구’, ‘덕이 있는 친구’, ‘고귀한 친구’ 또는 ‘감탄할 만한 친구’라는 뜻으로 팔리어 경전, ‘우파다 숫타’에서 비롯되었다. 


더불어 두꺼비에게 현재의 서툴고 누추함을 지키며 당당하게 지내다가 마침내 돌아가기를 마음으로 빌었다. '서투름'은 동양미학의 정수精髓 중 하나이다. 도덕경에서 ‘도’는 늘 서툴고(拙), ‘장자’ 역시 큰 기교는 서툴다고 했다. 심지어 동양 시학의 대표작인 ‘이십사시품(사공도 지음)’ ‘충담’에서도 ‘遇之匪深, 即之愈希. 脫有形似, 握手已違.(우지비심, 즉지유희. 탈유형사, 악수이위)라고 말한다. 즉 ‘마주쳐도 깊지 않으니, 다가가면 더욱 흐려진다. 형태로부터 벗어나 있으니 잡는 순간 이미 어긋나 있다.’ 욕망이나 기교를 버린 경지가 바로 서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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