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시간(4)
개념들
존재와 시간에는 철학적 용어의 새로운 개념들이 홍수를 이룬다. 하이데거는 기존의 언어를 이용하여 자신의 철학을 정립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당시 철학용어에는 쓰이지 않았던 일상에서 쓰던 새로운 말들을 대거 철학에 편입시킴으로써 후대에 공부하는 우리 같은 초심자들을 엄청난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오늘 개념들을 노트에 정리하면서 하이데거의 의도를 희미하게 알 것 같기도 하지만 나의 아둔함에 그저 답답함만 커진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니면 결국 이 산을 넘을 것이고, 좀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할 것이라고 믿으며 오늘 공부를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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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존재하는', '존재하는 것'과 같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있는', '있는 것'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존재'는 '존재함', '있음'이 실사화(化)된 경우이다. 그래서 오래전에는 '존재'라는 개념 대신에 '유(有)'라는 개념이 철학용어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존재’가 되었다.
존재하지 않는 '무(無)'도 표현되는 순간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존재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경험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존재’는 '있음'의 의미 외에도 '이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존재’는 '있음'과 '~임' 두 가지를 다 포함하고 있는 가장 포괄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언어사용, 심지어 학문적인 논의와 주제탐구 등에서도 이 두 가지의 의미의 '존재'개념을 넘어설 수 없다.
개념을 유와 종으로 구분한 아리스토텔레스(개념 = 유개념 + 종차)의 논리는 이제 파기하여야 한다. ‘존재’는 이러한 모든 형태의 보편성을 넘어서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가 함축하고 있는 초월적 '보편'의 단일성을 단지 유개념이 가지는 다양성과 구별 지어 생각했을 뿐이다.
물음이 가지는 세 가지의 형식적 구조
1) ‘물음에서 물어지고 있는 것’
2) 직접적인 물음의 대상 - ‘물음이 걸려있는 것’ 이를테면 찾고 있는 그것을 알기 위해서 무엇인가에 물음을 던져야 한다.
3) 물음에는 물음에서 본래 의도되고 있는 것, 물음이 꾀하고 있는 것.
사물들이나 사건들이 시공간 안에 놓여 있거나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사실(Tatsache)이라고 할 때, 인간 현존재의 세계 안에 있음이라는 '사실'을 그것과 구별하여 현사실(Faktum)이라고 부른다. 피투(던져짐 Geworfenheit)와 기투(던져짐을 떠맡는 Entwurf)를 동시에 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