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식 Sep 18. 2024

존재와 시간(3)

존재와 시간(3)


철학의 난제, 혹은 영원한 주제 ‘세계성(Weltlichkeit)’


우리에게 ‘세계’는 무엇이며 어떻게 묘사되었는가?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완벽한 실체인 ‘세계’에 대해 인류는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규명하고자 했으나 현재의 상황으로 본다면 거의 실패했거나 혹은 아직도 여전히 규명 중에 있다. 이런 사정으로 유추해 보면 고대의 사람들(특히 철학자)에게 밝혀내야 할 가장 절실한 주제가 아마도 ‘신’, ‘세계’, 그리고 바로 ‘인간’이었을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신’과 ‘세계’의 문제를 ‘天(천=하늘)’으로 파악하려 했다. 여기서 ‘천’은 ‘신’이자 동시에 ‘세계’였다. 그리고 그들이 ‘천’에서 이끌어낸 개념이 바로 ‘도道’였을 것인데, 중국과 동양의 학자들은 ‘천’과 ‘도’를 ‘인간’에게 적용하여 ‘인간’의 삶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로부터 귀납적으로 다시 ‘세계’를 이해하려 노력하였으며 그 작업 역시 현재도 유효하다. 


고대 서양의 철학자들 역시 동양 天의 다른 이름인 ‘자연’에 대한 탐구로 시작되었는데(용어는 다르지만 비슷한 경로로 보인다.) 그것은 곧 그들의 ‘세계’였다. 자연의 상황을 면밀하게 살펴본 뒤 그들은 자연을 ‘Logos(λόγος)’라고 불렀다. ‘Logos’의 어원적 의미는 ‘연설’, ‘진술’, ‘담론’으로부터 ‘계산’, ‘설명’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성’, ‘판단’, ‘이해’로 까지 확산된다. 그리고 플라톤주의자들에 의해 ‘Logos’는 매우 형이상학적 의미로 변화하여 ‘진리’ 혹은 ‘도’의 의미까지 확장되어 이어지는 기독교 세계로 전해졌다.


서양의 자연 철학자들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세계를 ‘Physis(피시스)’와 ‘Nomos(노모스)’로 분리하여 생각하였는데(역시 플라톤주의자들에 의해 이원론의 세계로 정형화된다.) ‘피시스’는 자연의 법칙을, ‘노모스’는 인간이 만든 규칙을 의미한다. 따라서 '피시스'가 ‘세계성’에 대한 표현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하이데거는 이렇게 발전해 온 세계성에 대하여 『존재와 시간』 제1편 현존재에 대한 예비적 기초분석, 제3장 ‘세계’의 ‘세계성’(Die Weltlichkeit der Welt), 14절 ‘세계’ 일반의 ‘세계성’이라는 이념(§ 14. Die Idee der Weltlichkeit der Welt überhaup)에서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한다. (하이데거의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워낙 난해하여 이야기를 알기 쉽게 조금 풀이해 보자면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그래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인용문을 약간씩 첨삭했기 때문에 위에서 밝힌 Chapter 번호로 인용 표시를 대신한다.)


하이데거는 먼저  '세계성’도 일종의 존재론적 개념이라고 먼저 전제한다. 동시에 ‘세계-내-존재’ 안에 있는 하나의 구조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세계-내-존재’를 현존재(Dasein)가 실존할 수 있는 원칙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다면 ‘세계성’ 또한 그 자체로 실존의 범주 속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존재론적으로 ‘세계’에 대해서 자문한다고 해서 우리는 결코 ‘현존재’를 분석하려는 주제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세계’는 존재론적으로 ‘현존재’에 대한 규정이 아니라 오히려 ‘현존재’로 파악된 하나의 성격이다. 그렇다고 ‘세계’라는 현상의 연구가 세계 내부적인 존재자와 그것의 존재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도 역시 아니다. (이를 테면 ‘세계’는 다양한 내부 존재자들의 연결이므로 그 존재자들의 영향이 ‘세계’에 미치는 한 그 존재자들 또한 ‘세계’의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된다는 이야기다.) 그 이유는 여전히 ‘세계’에 대한 현상학적인 묘사가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계’의 존재론적 해명을 위해 ‘세계’에 대한 충분한 의미 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면 이 ‘세계’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이데거는 ‘세계’라는 단어를 네 가지로 분류하여 이해하려고 한다.


1. ‘세계’는 존재적 개념으로 사용되며 이 경우, ‘세계’ 내부에 즉 우리의 눈앞에 존재할 수 있는 존재자의 총체를 의미한다.


2. ‘세계’는 존재론적인 용어로써 기능하며 1. 에서 언급된 존재자(우리의 눈앞에 존재할 수 있는 존재자들의 총체)의 존재를 의미한다. ‘세계’는 각기 나름의 존재자의 다양성을 포괄하는 영역의 명칭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세계’를 수학자의 ‘세계’라고 한다면 이때 ‘세계’는 수학으로 가능한 모든 대상들과 그 영역을 의미한다.


3. ‘세계’는 또 존재적인 의미에서 이해될 수 있는데, 이제는 ‘현존재’가 본질적으로 그것이 아닌, 즉 ‘세계’ 내에서 만날 수 있는 그리고 알고 있는 그런 단순 존재자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적인 ‘현존재’가 ‘현존재’로서 ‘그 안에서(세계)’ ‘살고 있는’ 그곳으로 이해될 수 있다. ‘세계’는 여기서 존재론 이전의 실존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다시금 여러 상이한 가능성들이 성립할 수 있다. ‘세계’는 누구에게나 인식 가능한 ‘우리-세계’ 또는 자신의 ‘고유한’ 가장 가까운 (심지어 혈연을 통한 가정을 포함하여) 모든 주위의 세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4. ‘세계’는 마지막으로 ‘세계성’이라는 존재론적-실존론적 개념을 지칭한다. ‘세계성’ 자체는 특수한 ‘세계들’마다 각각의 구조로 변모될 수 있지만, ‘세계’ 자체에 있는 ‘세계성’의 선험적 토대는 언제나 포함하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