境界
詩情發虛靈 (시정발허령) 시를 짓는 마음은 빈 영혼에서 일어나니,
煩心到幽絶*(번심도유절) 복잡한 마음 그윽한 곳에 이르렀네.
山中蓼花發 (산중료화발) 산 중엔 여뀌꽃 피어나고,
掃灑中登月*(소쇄중등월) 쓸고 뿌리면 문득 달 떠오르리니.
2024년 10월 1일 국군의 날 임시 공휴일 오후, 오전에 산 길을 오래 걸었다. 9월과 10월의 경계는 오직 인간의 일이다. 산은 아무런 경계 없이 나를 맞이했고 나 역시 어떤 경계도 없이 산속을 걸었다. 걷는 동안 경계를 생각하며 마음에 새겼다가 글로 옮긴다.
산스크리트어로 ‘용맹, ‘진보’ 또는 ‘나아감’을 뜻하는 Śūraṅgama(수랑가마)를 한역한 『능엄경』에서 경계境界를 이렇게 풀이한다.
“世는 흘러 옮아가는 것이요, 界는 방위다. 그대는 이제 알아야 한다. 동서남북, 동남서북상하는 界요. 과거·현재·미래는 世다." 境界란 바로 世界다.”
그 지극한 경계 속에서 마음을 비우고 다시 그 경계를 본다. 그 경계 속에 핀 여뀌를 보며 경계 밖에 달을 떠 올리지만 그 모든 것 자체가 또 경계 안에 있음을 안다.
* 교연(皎然, 730~799)의 시에서 각각 차운하다. 당나라 중기의 시인으로, 본명은 사청주謝清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