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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Oct 07. 2024

주관성, 가변성

1. 나의 '주관성' 그리고 '가변성'


교장 역할을 하고 다시 교사로 돌아오면서 다짐한 것이 있다. 어떤 경우에도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교장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지난 13개월 동안 비교적 잘 유지되었다. 하지만 오늘 스스로에게 한 그 약속을 파기하고 말았다. 물론 외부적으로 드러낸 분노는 아니었지만 현재 내가 있는 학교의 교장의 태도에 분노를 느끼며 하루를 보냈다. 사정은 이러하다.



나는 내일, 그러니까 10월 8일에 도 교육청에서 ‘교육활동 보호’를 주제로 주최하는 포럼에 패널로 참가한다. 정년을 일 년도 남겨두지 않은 나를 패널로 초청했으니 스스로 조금 의아했지만 어쨌든 참가하기 위해 출장신청을 했다. 오전에 미리 가서 약간의 조정시간을 가져야 했기에 내일 아침부터 종일 출장 신청을 했다. 문제는 공문에 오후 2시부터 일정이 시작된다고 온 것이었는데, 이런 경우 당연히 오전에 가서 조율할 것이라는 예상이 충분히 가능하다.



2교시를 마치고 복도에서 교감을 만났더니, 교장이 왜 오후 일정인데 전일 출장을 냈냐고 교감에게 물어 보더라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욕할 뻔 한 마음을 겨우 추스르고 교장실에 가서 뭐가 문제냐고 물었더니 그냥 확인해 본 것이라는 대답. 왜 당사자인 나에게 물어보지 않았냐고 했더니 수업 중이어서 그랬다는 대답이다. 일단 알겠노라고 이야기하고 내 자리로 돌아와 생각해 보니 자꾸만 화가 치민다.



왜 화가 나는지를 정리해 보면 이러하다. 먼저 나 스스로 수업과 학교 일정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는데 교장은 출장 시간으로 나를 의심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직접 당사자에게 물어보지 않고 교감을 통했다는 것은 전형적인 관료적 발상이다. 위계나 체계를 통해 교사를 압박하려는 태도 때문이다. 세 번째 교감의 전형적인 제삼자 적 태도이다. 자신에게 교장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그 자리에서 교사의 대변자가 되어야 한다. 그게 교감의 역할이다. 출장 신청을 자신도 승인했으면서 교장이 이야기하니 회피하듯 당사자에게 그 상황을 전달하는 교감이라면 교감으로서 큰 의미가 없지 않은가!



오후에 다시 깊이 생각해 보니 이 분노의 핵심은 강한 ‘주관성’에 기초한 ‘가변성’의 부적응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내 상황은 이미 변했다. 단위학교의 평범한 교사다. 그런데 나에게 아직도 교장 시절의 뉘앙스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그 ‘주관성’에 치우쳐 그만 ‘가변성’을 잠시 놓친 것이다. 우리 학교 교장, 교감의 행동이나 태도가 나의 ‘주관성’과 ‘가변성’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어떤 경우에라도 나는 내 태도의 주인이어야 하는데 잠시 흔들렸음을 자인하다.    


2. 은유


6조 ‘혜능’과 ‘신수’(5조 '흥인' 선사 밑에서 참구 하여 5조 선사 아래 제 일위였다)와의 禪問答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식의 주관성과 가변성을 격파한다.


'신수'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莫使惹塵埃(신시보리수 심여명경대 시시근불식 막사야진애)


“몸이 곧 진리의 나무라면, 마음은 곧 밝은 거울의 틀이다.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먼지와 때가 끼지 않게 하라.” 이렇게 이야기하여서인지는 몰라도 그는 5조 흥인으로부터 의발을 물려받지 못한다.


그러자 '혜능'은 이를 듣고 답을 했다.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보리본무수 명경역비대 본래무일물 하처야진애)


 “진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고, 밝은 거울 또한 틀이 아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느 곳에 먼지와 티끌이 일어나겠는가?”


결국 '혜능'이 의발을 물려받는다.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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