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키르케고르의 논리 전개 방법
A. 간접 전달법
키르케고르가 남긴 여러 저작에서 제시한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진리’이다. 키르케고르는 진리를 주체성으로 파악했다. 주체적 진리는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기에는 곤란한 부분이 많다. 왜냐하면 주체적 진리란 개인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그것으로부터 얻어진 여러 대상들 속에서 선택을 거치기 때문에 사람마다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키르케고르는 이 문제, 즉 주체적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해결하기 위해 ‘간접전달법’이라는 독특한 방법을 고안해 냈다. 하지만 완전히 그의 방법은 아니었는데 이미 소크라테스에 의해 사용된 방법이기도 하다.
간접전달법의 구체적인 방법이 ‘아이러니’로서 키르케고르의 석사학위 논문이 바로 “On the Concept of Irony with Continual Reference to Socrates” “아이러니의 개념 – 소크라테스를 지속적으로 참조하면서”이다.
1) 아이러니
아이러니(Irony, 반어 또는 반어법)는 표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실제와 반대되는 의미로 하는 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방법을 ‘반어법’이라 한다. 키르케고르의 석사논문 표제이기도 하다. 아이러니의 어원은 기원전 5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즉 그리스어 'eironeia' (εἰρωνεία)에서 유래되었으며 'Eironeia'는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기원전 446년 ~ 기원전 385년,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대표적 희극작가)의 작품에서처럼 희극 내부에 고정된 캐릭터인 'eiron'(속이는 사람, 일반적으로 극 내부에서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면서 허풍쟁이인 'alazṓn'=자랑꾼을 무너뜨리는)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2) 소크라테스와 아이러니[1]
키르케고르의 논문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 소크라테스의 관점을 아이러니로 보기, 2부 아이러니의 개념이다. 매우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Part One: The View of Socrates Viewed as Irony (1부 소크라테스 관점으로 아이러니 보기)
- Introduction: 소크라테스를 소개함
- The View Made Possible(가능하게 만드는 관점)
모든 지식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목숨을 희생할 용기가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오르페우스 이야기 인용) 소크라테스의 논증의 특징은 통일성을 구하기 위해 개념의 상대적인 불일치를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함. 반면 프로타고라스 논증의 특징은 명백한 불일치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 불일치를 포섭할 개념 제시가 부족함.
- The Actualization of the View(관점의 실현)
소크라테스는 당시의 대세였던 신탁 대신에 신성한 자신의 내면에 기초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 이 내적 목소리가 소크라테스에게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내면을 유지할 수 있고 동시에 매우 주체적인 상황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 The Condemnation of Socrates(소크라테스의 비난)
소크라테스가 신탁을 거부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인 것은 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신탁을 조건 없이 수용함으로써 나타나는 무지, 즉 각자의 내면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을 지적함.
소크라테스의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는 말은 변증법의 시작이라고 봄.
"너 자신을 알라"는 다른 존재와 자신을 분리한다는 의미라고 해석. 이렇게 분리된 자아는 소크라테스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델피 신전 신탁에 있는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내면에 상응하는 신탁적인 선언이라고 해석함.
-The View Made Necessary(필요한 관점)
그리스의 아테네가 가지는 고대 지식의 중심지로서의 상징성에 대해 언급
소피스트에 대한 비난,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의 견해 차이를 밝힘, 소크라테스의 도덕성과 정당성을 밝힘(소피스트에 대하여)
- Appendix: Hegel’s View of Socrates(부록: 소크라테스에 대한 헤겔의 견해)
자신(키르케고르)은 헤겔의 견해를 따를 것이라고 천명. 헤겔은 소크라테스를 도덕의 창시자로 부르지만, 헤겔은 도덕과 윤리를 구별함. 헤겔이 소크라테스적 방법으로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와 그의 산파술을 예로 든다.
Part Two: The Concept of Irony(2부 아이러니의 개념)
당시(키르케고르)의 시대적 상황을 이야기함. 키르케고르다 살았던 19세기 초의 유럽은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를 포함한 수많은 사상이 퍼져나갔으며, 독일과 이탈리아가 통일 국가로 거듭났다. 또한, 산업 혁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 자본주의가 대두되었으며 열강들이 제국주의를 확대해 나가던 시기였기 때문에 키르케고르는 이 시대를 ‘비애의 시대’로 불렀다.
아이러니스트(아이러니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의 즐거움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올가미에 걸린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아이러니스트들은 이와 같은 사람들의 약점을 어디서나 발견하는 것이고, 그러한 약점을 발견한 사람이 더 뛰어난 사람일수록, 그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고, 그 사람을 자신의 힘으로 삼을 수 있다는 데서 더 큰 기쁨을 느낀다.(비록 그 사람 자신은 그것을 알지 못하더라도). 따라서 때로는 뛰어난 사람조차도 아이러니스트에게는 줄에 매달린 인형과 같으며, 줄을 당겨서 원하는 동작을 하게 할 수 있는 장난감과 같다.
아이러니적 관점에서 본다면 모든 것이 무無(nothing)로 수렴하는데 세 가지 방향의 無로 구분할 수 있다. 즉 추상적 무(speculative nothing)는 구체화되는 순간 사라지는 무로써 그 자체가 nisus formativus(형성적 충동)[2]이기 때문이라고 판단.
신비적 무(mystical nothing)는 표상과 관련한 무로써 다양한 내용이 포함될 수 있는 무이다. 마지막으로 아이러니한 무(ironic nothing)로써 여러 번 아이러니적 방법에 의해 시도되어 이제는 유령처럼 떠도는 침묵이 된 무이다.
- The World-Historical Validity of Irony, the Irony of Socrates(아이러니의 세계사적 유효성,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
세계성에 대한 언급으로 세계의 진행 과정은 기꺼이 가고자 하는 사람을 이끌어 가고, 기꺼이 가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을 세계의 진행 과정이 쓸어버린다고 생각.
- The Irony of Fichte[3](피히테의 아이러니)
철학은 마치 안경을 쓰고 있으면서도 안경을 찾으러 다니는 사람 같다. 코 바로 앞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지만 코 바로 앞을 보지 않기 때문에 결코 찾지 못한다.
아이러니스트들은 일반적으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그가 자신을 위해 지은 시적인 캐릭터에 적합한 의상을 찾으려는데 사용하는 세심한 배려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
- Friedrich Schlegel[4] (프리드리히 슐레겔)
슐레겔의 소설 Lucinde[5](루신데)에 대한 키르케고르의 소회
- Tieck[6](루트비히 티크)에 대한 키르케고르의 견해
- Solger[7](칼 솔거)
솔거는 아이러니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의식하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헤겔은 솔거의 표현에 주의를 기울였고 그를 어느 정도 편애했다. 그의 아이러니는 사색적인 아이러니이다. 그는 모든 것에 존재하는 허무함을 인식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솔거에게 아이러니는 하나의 기관이며, 모든 부정적인 것에 대한 감각이다.
- Irony as a Controlled Element, the Truth of Irony(조종 가능한 요소로서의 아이러니, 아이러니의 진실)
아이러니가 적절하게 조종되면, 일상생활 속의 항상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이 있다고는 믿지 않는 것처럼 현상에 대한 모든 막연한 우상 숭배도 막을 수 있다.
유머에 대한 회의주의는 아이러니에 대한 회의주의와 관련이 있는데, 무지가 오래된 명제인 credo quia absurdum[8] [나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훨씬 더 강한 긍정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무지에 대한 평가가 인간적인 범주가 아니라 나아가 거대한 인류학적 범주에서 파악하기 때문이다.
[1]여기서는 키르케고르의 석사 논문을 영어로 옮긴 『The book was translated and edited by Howard and Edna Hong』1989. 요약 인용.
[2]형성 충동: 어떤 것을 형성하거나 발전시키려는 내적 욕구 또는 힘, 'nisus formativus'는 라틴어로 '형성 충동'을 의미하며, 이는 어떤 것이 형성되거나 발전하는 데 필요한 내적 힘이나 욕구를 나타낸다. 주로 철학적 또는 심리적 맥락에서 사용되며, 존재의 본질이나 발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키르케고르의 논문에서 '형성 충동'은 구체적인 것에 대한 갈망을 나타내며, 이는 ‘아이러니’와 관련된 주제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
[3] Johann Gottlieb Fichte (1762년∼ 1814년) 독일 관념론 철학자. 헤겔, 프리드리히 셸링과 더불어 독일 관념론을 대표하는 철학자.
[4] Karl Wilhelm Friedrich von Schlegel (1772년∼1829년) 프리드리히 슐레겔(Friedrich Schlegel)은 독일의 시인, 평론가, 학자이다. 친형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과 함께 예나의 초기 낭만주의 (Jenaer Frühromantik)의 주요 인물의 한 명이다.
[5]루신데(프리드리히 슐레겔의 소설 제목) 프리드리히 슐레겔(Friedrich Schlegel)의 유명한 소설 제목으로, 편지, 대화, 격언, 일기 항목 및 기타 형식으로 된 Julius와 Lucinde의 사랑이야기. 핵심 내용으로는 당시에는 금기시되었던 신비, 아이러니, 성의 해방, 미적이며 개인중심적인 윤리에 대한 것들이다.
[6] Johann Ludwig Tieck(1773년~1853년) 독일의 시인, 소설가이다. 그의 시는 때때로 기교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었으나 낭만주의의 회화적·음악적 서정의 표현에 뛰어났음.
[7] Karl Wilhelm Ferdinand Solger(1780년∼1819년) 독일의 철학자. 낭만주의 이론과 아이러니 이론가로 알려져 있다.
[8]퀸투스 셉티미우스 플로렌스 테르툴리아누스(Quintus Septimius Florens Tertullianus, 약 155년~ 240년 경) 또는 터툴리안(Tertulian)은 기독교의 교부이자, 평신도 신학자이다. '삼위일체'라는 신학 용어를 가장 먼저 사용한 이로 알려져 있음. ‘credo quia absurdum’은 그가 한 말로 알려져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