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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Nov 26. 2024

노자 도덕경 산책(66)

兆朕


여름처럼 폭우가 왔다. 새벽 4시경, 아침 운동을 위해 집을 나서니 천지는 캄캄하고 빗줄기는 참으로 거셌다. 30분을 걷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얼굴을 제외한 온몸이 흠뻑 젖었다. 


자연은 늘 예상 밖이다. 아니 자연은 예상할 수 없다. 일기 예보가 자주 틀리는 이유다. 자연에 대한 예상은 언제나 예상일 뿐이다. 예상을 넘어 짐작이나 조짐으로도 거의 알 수 없는 것이 자연이다.    


조짐兆朕과 예상豫想은 조금 다르다. 조짐은 사마천의 사기에 처음 등장한다. 진나라의 처음 황제 영정과 그의 아들 부소와 호해의 비극적 골육상쟁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이 말의 뜻은 징후, 낌새의 뜻이 강하다. 뭔가 객관적인 증거가 나타날 때 부르는 말이다. 반면 예상은 그저 생각일 뿐이다. 조짐에 비해 예상은 다분히 주관적일 수 있다.


도덕경 여러 곳에서 이 조짐을 이야기한다. 


道之爲物, 惟恍惟惚, 惚兮恍兮, 其中有象, 恍兮惚兮, 其中有物.(도지위물, 유황유홀, 홀혜황혜, 기중유상, 황혜홀혜, 기중유물) 『도덕경』 21장 부분

도라는 것은, 있는 듯 없는 듯, 없는 듯 있는 듯, (하지만) 그 가운데 형상이 있고, 있는 듯 없는 듯 (역시) 그 가운데 사물이 있음. (여기서 兮는 ~그런가? 정도의 의미임)


여기에 쓰인 恍(황), 惚(홀)은 모두 ‘흐릿하다’는 뜻이다. 뭔가 있는 듯하지만 확실하지 않은 상태 바로 조짐이다. 즉 생각을 넘어 뭔가 객관화된 사실들이 있지만 아직은 사실의 꿰미로 끼울 수 없는 상태가 바로 조짐이다.


고전에 등장하는 ‘흐릿하다’는 대부분 식견망매識見茫昧의 의미가 강하다. 격몽요결에 이런 말이 있다. 但不學之人 心地茅塞 識見茫昧(단불학지인 심지모새 식견망매, 공부하지 않는 자는 마음이 풀숲 같고 식견이 어둡다.) 도덕경에서 말하는 ‘흐릿함’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아마도 세계를 보는 노자의 관점과 공맹의 관점 차이일 수도 있다.


사실 날씨에도 조짐은 있다. 하지만 조짐을 통해 짐작한 상태나 상황을 넘는 경우가 더 많다. 오늘 아침도 어제저녁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는 있었으나 그렇게 폭우가 내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조짐조차 없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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