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지용
사전 투표를 한 덕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9일에 투표하는 일이 그리 힘든 일이 아님에도 남들 다 하는 분위기라 5월 4일 오후에 사전 투표를 마쳤다. 그리고 한 사람의 후보를 선택하고 그가 이 나라 제 19대 대통령이 되기를 마음으로 기원했다.
장자 인간세(人間世)와 소요유(逍遙遊)에는 무용지용에 대한 여러 개의 일화가 나온다. 그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큰 목수인 장석(匠石)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제(齊) 나라로 가다가 곡원(曲轅) 땅에서 사당에 서 있는 거목을 만났다. 많은 사람들이 그 나무의 엄청난 크기에 놀라서 나무를 구경하고 있었고, 장석의 제자들도 그 나무를 보자 경탄을 했다. 그러나 장석은 그 나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치면서 그 나무의 거대한 위용에 감탄하는 제자들에게 핀잔을 주었다.
장석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건 쓸모없는 나무야. 그것으로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널을 짜면 곧 썩으며, 기물을 만들면 곧 망가지고 문을 만들면 진이 흐르며, 기둥을 만들면 좀 이 생긴다. 그러니 저건 재목이 되지 못하는 나무야.”(“散木也. 以爲舟則沈, 以爲棺槨則速腐, 以爲器則速毁, 以爲門戶則液樠, 以爲柱則蠹. 是不材之木也. 無所可用.”)
장석의 이야기가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사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을을 지키는 거목들의 품종들을 보면 회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인데 이 나무들은 나이가 작을 때에는 한결같이 나무의 질이 너무 연하고 잘 부러지며 또 잔 가지가 많고 벌레에 취약하여 목재로는 전혀 쓸 수가 없는 나무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세월의 풍상을 견디고 그 불리함을 이겨낸 뒤 거목이 되면 이 나무들은 마을을 지키는 나무가 되고, 사람들에게 크고 넓은 그늘과 쉼터를 제공하는 동시에 먼 곳에서도 쉽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거목이 되는 것이다.
장석의 입장에서 그 나무들은 목재로써는 쓸모가 없다고 한 것인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효용론'의 입장이다. 즉 목수의 입장에서 여전히 그 나무들은 아무리 크고 아름드리 나무라 하여도, 나무를 이용하는 측면에서는 여전히 필요 없는 나무였을 것이다. 느티나무, 팽나무, 회나무 등은 나무가 커져도 여전히 목재로써는 가치가 없다. 그런 장석에게 거목이 꿈에 등장하여 이렇게 말한다.
“그대는 무엇에다 나를 비교하려 하는가? 그대는 나를 文木에 비교하려 하는가? 사과나무, 배나무, 귤나무, 유자나무는 나무 열매와 풀 열매 따위의 과실이 익으면 사람들에게 잡아 뜯기고, 잡아 뜯기게 되면 욕을 당하게 되어서, 큰 가지는 꺾이고 작은 가지는 찢기니, 이것은 그 잘난 능력으로 자신의 삶을 괴롭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天壽를 마치지 못하고 도중에 夭折해서 스스로 세속 사람들에게 타격을 받는 것들이니, 모든 사물이 이와 같지 않음이 없다.” ("櫟社見夢曰 女 將惡乎 比予哉若 將比予於文木邪 夫 柤梨橘柚 果蓏之屬 實熟則剝 剝則辱 大枝折 小枝泄 此 以其能 苦其生 者也 故 不終其天年而中道夭 自掊擊於世俗 者也 物 莫不若是")
“또한 나는 쓸 데가 없어지기를 추구해 온 지 오래되었는데, 거의 죽을 뻔했다가 비로소 지금 그것을 얻었으니, 그것이 나의 큰 쓸모이다. 가령 내가 만약 쓸모가 있었더라면 이처럼 큰 나무가 될 수 있었겠는가? 또한 그대와 나는 모두 事物인데, 어찌하여 상대방을 事物로 대할 수 있겠는가? 그대도 거의 죽어가는 쓸모없는 사람이니 또 어찌 쓸모없는 나무를 알아볼 수 있겠는가?”("且 予 求無所可用久矣 幾死 乃今 得之 爲予 大用 使予也而有用 且得有此大也邪 且也若與予也 皆物也 奈何哉 其相物也 而 幾死之散人 又惡知散木")
장석의 어리석음은 곧 우리의 어리석음이다. 눈 앞에 보이는 지나친 효용만을 따지다 보니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지난 세월 이 효용의 논리에 휘말려 정말 형편없는 인물들을 대통령으로 뽑아 뒤늦게 가슴을 치고 후회해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여 지금 당장 눈 앞에 큰 효용은 아닐지 모르지만 사람들에게 넉넉한 그늘을 제공하고 마을을 지키는 큰 정자나무 같은 그런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 봄마다 작고 예쁜 녹색의 새싹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며, 여름에는 무성한 잎으로 그늘이 되어주다가 마침내 가을이 되면 아름다운 낙엽으로 물들 줄 아는 거목 같은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
거목처럼 든든하고 “무용의 도”를 느낄 수 있는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을 빨리 만나고 싶다.
사진은 경남 거창 황산마을 팽나무- 구글에서 얻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