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시간(17)
안에(內) – 있음(存在) 그 자체(Das In-Sein als solches)[1]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존재 틀인 ‘세계-내(안에)-존재(있음)(In-der-Welt-sein)’를 세 가지로 나누어 분석한다. 그 처음이 세계-내-존재를 ‘세계’라는 틀 속에서 분석하였고, 두 번째는 ‘세계-내-존재’의 속성인 세계 안에 사는 일상적 현존재가 누구인가를 분석했다. 앞의 두 부분은 전술한 바와 같다. 세 번째 단계인 ‘내-존재(안에-있음)’ 자체를 분석하는 일이다. 여기서 안(內)이란 ‘세계 안’이라는 의미이고, 있음은 그 세계 속에서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내-존재’를 단적으로 표현하면 현존재가 ‘세계에 몰입해서 살고 있음’[2]이다.
‘안에-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현-존재의 ‘개시성(開示性, Erschlossenheit)’[3]을 고민해 보는 것이다. 여기서 현-존재(Da-sein)의 ‘현(Da)’은 근본적인 열림(diese wesenhafte Erschlossenheit)[4]을 말한다. 우리가 앞서 파악한 것처럼 자기의 존재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유일한 존재인 현존재는 자신의 현(Da-나타냄, 열어서 밝힘)으로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즉 현존재는 선험적으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고 그로부터 열어 밝히는데 그것이 바로 현 존재의 개시성이다.
하이데거는 현 존재의 개시성을 두 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한다. 하나는 세계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공간 개시성’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에 대한 표현인 ‘lumen natural(자연의 빛)’[5]으로서의 개시성이다. 자연의 빛이라 함은 인간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밝음이라는 의미이다.
하이데거는 개시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계-내-존재에 의해 구성되고 있는 존재자는 그 자체가 그때마다 각기 자신의 ‘거기에’ 존재한다. 친숙한 낱말의 뜻에 따를 것 같으면 ‘거기에’는 ‘여기’와 ‘저기’를 의미한다. ‘나 여기에’의 ‘여기에’는 언제나 손안에 있는 ‘저기에’에 대해서 거리 없앰이며, 방향 잡음이며, 배려하며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어떤 그러한 손안에 있는 ‘저기에’에서부터 이해되고 있다. 이렇게 현존재 <거기에 있음>에게 그러한 식으로 그의 ‘자리’를 규정해 주는 현존재의 실존론적 공간성은 그 자체 세계-내-존재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6]
위 글을 조금 풀이해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거기’라는 말은 광범위하여 ‘여기’와 ‘저기’로 분류하고 ‘여기’와 ‘저기’의 차이를 설명함에 있어 ‘여기’는 ‘저기’보다 가깝고 상대적으로 ‘저기’는 ‘여기’보다는 멀다는 것을 하이데거는 ‘거리 없앰’이라는 표현 한다. 그런데 그 거리의 멀고 짧음에도 방향이 존재하게 되는데(왜냐하면 가용적 존재 혹은 전재자, 그리고 현존재의 위치를 특정하는 것이므로) 그것을 ‘방향 잡음’(거리 없앰의 존재로부터 향하는 일정한 방향)이라 했고 배려한다는 것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여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볼 때 현존재의 실존론적 공간이 바로 세계-내-존재의 범위 안에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두 번째인 자연의 빛에 대한 하이데거의 설명이다.
“인간 안의 '자연의 빛'이라는 비유적 표현은 이 존재자가 그의 '거기에' 존재하는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실존론적 또는 존재론적 구조 외에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존재자가 ‘밝게 빛나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에서 세계-내-존재로서 ‘밝혀져 있음'을 말한다. 즉 어떤 다른 존재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곧 ‘밝힘’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직 실존론적으로 그렇게 밝혀진 존재자에게만 눈앞의 것이 빛 속에서 접근 가능하거나 어둠 속에 은닉되어 있다. 현존재는 처음부터(본성상) 자신의 '거기에'를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는 이러한 본질의 존재자가 아닌 셈이 된다. 현존재는 언제나 그의 ‘열어 밝혀져 있음’(개시성)으로 존재한다."[7]
자연의 빛이라고 비유되는 현존재에 대한 하이데거의 입장은 매우 분명하다. 자연의 빛을 내고 있고 그 빛이 비치는 것 또한 현존재 자신이다. 현존재 자신이 세계-내-존재로서 세계 속(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자(가용적 존재자이든 전재자이든)에게 빛을 비춘다는 것이다. 즉 현존재는 그 자신의 존재가 빛으로서 ‘밝음(Lichtung)’이요, 동시에 ‘밝힘’인 것이다. [8]
[1] 소광희는 내-존재 자체라고 번역
[2] SZ 11판, 1967. 130쪽.
[3] ‘개시성’이란 세계를 향하여 열어 밝힌다는 의미이다.
[4] 위의 책 같은 곳. 처음부터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상황, 즉 우리의 일상 속에서 언제 파악될 수 있는 상태 또는 상황.
[5] 위의 책 133쪽.
[6] Sein und Zeit, M. Heidegger, 이기상 역, 까치, 1998. 184쪽
[7] 위의 책 185쪽
[8]『존재와 시간 강의』 소광희 지음, 문예출판사, 2003. 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