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교육

바로 지금, 우리가 반드시 회복해야 할 가치(1)

by 김준식

바로 지금, 우리 교육에서 반드시 회복해야 할 가치에 대해(1)


1. 공존


12.3 계엄과 그 이후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교사로서 참으로 깊은 자괴감을 느낀다. 자괴감이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느끼는 부끄러움이니 이 말 자체가 사실은 매우 수동적인 태도다. 38년의 교직 생활은 스스로 강력한 의지를 외부로 표현하는 태도를 잊어버리게 만든 세월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계엄 이후 온갖 거짓으로 본질을 흐리는 극단적인 무리들이 이제는 법을 아예 무시하는 장면에서 분노와 열패감 마저 느끼게 된다. 하여 혼란스러움을 다잡고 교사로서 다가올 시대에 대한 교육(흔히 미래 교육이라고 부르는)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다. 더 이상 현재의 권력층과 같은 괴물들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교육이 가야 할 방향과 그 철학을 생각해 본다.


기술의 발전으로 수많은 도구들과 현란한 방법들이 교육 현장에 몰아치지만 학교, 교사, 그리고 아이들을 지탱하는 근본적인 교육의 큰 틀은 변함이 없을 것이며, 그 철학적 기반 역시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 오히려 이번 사태로 인해 철학적 기반은 더 강화되고 분명해져야 한다. 그것이 무너지면 지금의 혼란과 무질서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불안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교육하는 근본 철학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가치는 매우 다양하다. 그중에서 시간이 갈수록 흔들리거나 희미해지는 것들이 있다. 바로 ‘공존’ 그리고 ‘자율’과 ‘책임’이다. 언뜻 보수적인 느낌이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보수는 사회 유지의 가치를 내재화하는 진정한 의미의 보수를 말한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우리 교육의 중요한 성장 동력인 진보 교육의 가치들이 더욱 새롭고 건강한 모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교육 철학의 본질에 대한 성찰, 이를테면 보수적 관점도 이제는 고려되어야 한다. 다가올 혼란스러운 미래 세상에서 ‘공존’ 그리고 ‘자율’과 ‘책임’의 가치는 학교와 교실, 그리고 교사와 아이들의 관계를 유지하고 강화할 중요한 철학적 토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공존’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자.


프랑스 철학자 장 뤽 낭시(Jean-Luc Nancy 1940~2021)는 2000년 출간한 그의 책 『Être singulier pluriel』(Being Singular Plural, 단수형의 복수, 2000)에서 ‘공존’을 이렇게 정의하였다. “공존은 공유(sharing)와 분리됨(dividedness)의 원리로 구성된다.”(Robert D. Richardson and Anne E. O'Byrne 공동번역,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0)


‘공유’는 말 그대로 함께 나눔이다. 이 땅이 산업화되기 이전, 아직은 마을마다 있었던 우물이 ‘공유’의 대표적 사례다. 생명의 필수 요소인 물을 온 마을 사람들이 한 곳에서 같이 나눠 마셨던 우물은 거의 완벽한 형태의 ‘공유’다. 물동이나 물지게를 통해 우물물을 자신의 주거 공간으로 옮겼을 때, 비로소 거기에 ‘분리됨’의 가치가 생겼을 뿐이다. ‘분리됨’은 ‘공유’의 상태에서도 존재할 수밖에 없는 완벽한 각자의 것에 대한 설명이다. ‘공유’할 수 없는 것은 각자가 관리한다. 지금처럼 오직 나의 것이라서가 아니라 함께 나누기에는 오히려 불편하거나, 혹은 ‘공유’함에 있어 윤리적 도덕적 문제가 수반하는 것들에 대한 관리방법일 뿐이다. 이 두 개의 가치가 ‘공존’의 핵심이라는 것인데 현재 우리 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천민자본주의의 고질적 병폐인 이기적 소유와 나아가 독점의 망집이 아이(중 고교 학생)들에게 스며 자신도 모르게 천민자본주의의 기괴한 변종인 극우를 닮아가는 현재의 상황에서 공존의 가치, 즉 ‘공유’와 ‘분할’의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극우로 치닫는 생각의 끝에는 언제나 ‘자기중심’이 매달려 있다. ‘자기중심’의 바탕은 그 어떤 것도 절대 공유하지 않겠다는, 그리고 공유할 수 없다는 극단적이고 맹목적인 소유욕이 달려있다. 즉 세상의 모든 가치의 기준을 ‘나의 것’과 ‘너의 것’으로 재단해 버린다. 나의 것이 아니거나 될 수 없다면 그 순간 어떤 가치도 없다는 생각이 바로 극우적 사고의 기초인 것이다. 더 많은 우리 아이들이 이 극우적 사고에 오염되기 전에 학교는, 그리고 우리 교사들은 ‘공유’에 기초한 ‘공존’의 철학을 심어줄 강력한 필요성이 생기는 것이다.


사실 ‘공존’의 정신은 동양의 핵심 정신이었다. 『중용』 30장에 중니조술요순(仲尼祖述堯舜)에 ‘萬物並育而不相害 道並行而不相悖’(‘만물병육이불상해 도병행이불상패)라고 했다. ‘만물이 함께 자라되 서로 해치지 않고, 도(道)가 함께 행해지되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서양적 사고가 ‘소유’의 측면에서 고찰되는 것이라면 동양적 사고는 ‘관계’의 측면이 더욱 중요하다.



앞부분의 ‘萬物並育而不相害’가 바로 ‘공존’의 분명한 모습이다. 함께 자란다는 것은 다양한 함의를 품고 있다. 함께 자라서 좋은 면이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어쩌면 피해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피해를 모두가 나누는 것이다. 특별히 나누어지지 못하는 경우(매우 약하거나 성장이 어려운)에는 그 어려운 부분조차도 함께 나누어야 하는 것이 ‘공존’이다. ‘공존’은 분명히 겹쳐있지만 서로를 침해하지 않는다. 인간과 자연, 사회가 서로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지지하고 동시에 각자의 성장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공존’의 본모습이다.



(계속)

2. 자율과 책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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