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시간(22)
3) 현존재의 존재는 염려
불안은 세계-내-존재인 현존재와 공동 현존재들의 존재 양식 자체로부터 열어 밝혀진다. 즉 불안해 한다는 것은 현존재(공동 현존재 포함)가 가지는 존재의 방식이다. 불안은 존재자가 실존하며 현실에 속해 있음을 나타내는 유력한 증거인 것이다.
중복해서 말하지만 현존재는 그의 존재에서 바로 이 존재 자체가 문제가 되는 그런 존재이다. 위 문장에서 ‘~이 문제가 되다(es geht um~)’[1]는 말은, 가장 고유한 존재 가능성으로서의 자신을 기투하면서 존재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이해의 큰 틀 안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즉 이 말은 현존재가 자유로운 존재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고 있다는 것인데 하이데거는 그 문제 삼음의 본질을 ‘염려’로 파악하고 그 염려는 반드시 현존재인 자가 자신을 ‘앞질러 있다(sich-vorweg-sein)’ [2]고 말한다.
여기서 ‘앞질러 있음’이란 애매하지만 이렇게 풀이할 수 있다. 즉 이미 어떤 세계 내에 존재하는 현존재가(피투적 존재인) 스스로 기투(자신의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한 어떤 움직임)하려는 상황에서 언제나 앞서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 ‘염려(Sorge, 불안 또는 마음 씀)[3]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미 현존재의 기투가 작동하는 순간, 그 이전에 염려는 작동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에 관련된 이야기[4]가 있다.
‘염려(Cura)’가 강을 건너갈 때, 그녀는 점토를 발견했다. 생각에 잠겨 그녀는 한 덩어리를 떼어내어 빚기 시작했다. 빚어낸 것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유피테르(주피터)’가 다가왔다. ‘염려’는 빚어낸 점토 덩어리에 혼을 불어넣어달라고 ‘유피테르’에게 간청했다. ‘유피테르’는 쾌히 승낙했다. ‘염려’가 자신이 빚은 형상에 자기 이름을 붙이려고 하자, ‘유피테르’가 이를 반대하며 자기의 이름을 주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섰다. 쿠라, 즉 ‘염려’가 만든 피조물 이름을 가지고 ‘염려’와 ‘유피테르’가 다투고 있을 때 ‘텔루스’(대지의 신)도 나서서, 그 형상에는 자기의 몸 일부가 제공되었으니, 자신의 이름이 붙여지기를 요구했다.
서로 다투던 이들은 ‘사투르누스’(시간)를 판관으로 모셨다. ‘사투르누스’는 다음과 같이 얼핏 보기에 정당한 결정을 내려주었다. "그대, 유피테르, 그대는 혼을 주었으니 그가 죽을 때 혼을 받고, 그대, 텔루스는 육체를 선물했으니 육체를 받아가라. 하지만 '염려'는 이 존재를 처음으로 만들었으니, 이것이 살아 있는 동안, '염려'는 그것을 그대의 것으로 삼을지니라. 그러나 이름 때문에 싸움이 생긴 바로, 그것이 후무(humo 또는 humus, 흙)로 만들어졌으니 '호모(homo인간)'라고 부를지니라.(여기서 라틴어 ‘Cura’는 영어 ‘Care’이다.)
즉 인간의 전 존재론적 본질은 ‘염려’ 그 자체이며 그 염려는 언제나 존재에 ‘앞질러 있다(sich-vorweg-sein)’있을 수 밖에 없는 이야기를 하이데거는 우화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1 ]SZ 11 판, 1967. 191쪽
[2] 앞의 책 192쪽
[3] 이 현존재의 염려가 가용적 존재자에게로 향하는 것은 배려(Besorge)이고 공동 현존재(타자)에게로 향하면 고려(Fuersorge, 또는 주의, 보호)이다. 당연히 현존재 자신에게 향하는 것이 마음 씀(염려, 넓게는 불안)이다. 『존재와 시간 강의』 소광희 지음, 문예출판사, 2003. 137쪽
[4] 쿠라 이야기 SZ 11판, 1967. 197~8쪽에는 라틴어로 표기되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