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시간(28)
(2) 양심의 결단성[1]
하이데거는 양심의 부름을 받고 더불어 들음을 통해 불안한 침묵 속에서 양심의 소리가 지적한 스스로의 책임을 찾아 그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를 결단성(결의성)이라고 불렀다.[2]
즉 이러저러한 현존재의 상황을 정리하여 마침내 양심의 부름에 따라 결론에 이른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이데거에 의하면 결단성은 현존재가 세계에 대하여 열어 밝혀져 있는 두드러지고 뛰어난 모습의 하나라고 주장한다.[3]
하이데거에 의하면 이러한 결단성은 사실 현존재의 본래 모습에 가깝기 때문에 이것을 ‘근원적 진리(ursprüngliche Wahrheit)’라고 표현한다. 논리적 구조에 의해 결단성이 근원적 진리이므로 당연히 본래적이고 동시에 세계에 대하여 개시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세계 속에 존재하는 현존재의 책임 있음에 대한 양심의 부름을 듣고 자신을 일깨우는(불러 세우는) 것이므로 앞서 설명한 현존재의 존재자로서의 염려(마음 씀)가 가지는 본래성이기도 하다.
그러면 본래적으로 개시된다는 것의 구체적인 모습은 무엇인가? 하이데거는 이렇게 표현한다.
“결단성은 본래적인 자기 존재로서 현존재를 그의 세계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며 현존재를 공중에 떠도는 것으로 떼어놓는 것도 아니다. …… 결단성은 본래적인 열어 밝혀져 있음으로써 본래적으로 세계-내-존재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결단성은 자기 자신을 바로 그때마다의 배려하며 손 안의 것 곁에 있음에게로 데려오며 자기 자신을 타인과 함께 심려하며 더불어 있음에 부딪치게 한다."[4] 이를 테면 결단성을 통해 비로소 현존재는 공동현존재와 본래적 관계 맺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다시 한번 더 결단을 내린 현존재의 상황을 정리한다.
“결단을 내린 현존재는 자기 자신이 선택한 자기의 세계로 자신을 자유롭게 내준다. 자기 자신에로의 결단성이 현존재를, 비로소 함께 존재하는 타인들을 그들의 가장 고유한 존재가능에서 존재할 수 있도록 하며, …… 결단한 현존재는 타인의 양심이 될 수 있다. 결단성의 본래적인 자기 존재에서부터 비로소 처음으로 본래적인 '서로 함께'가 발원되는 것이지, '세상 사람들' 속에서의 애매하고 질투심 섞인 약속들과 수다스러운 친교 그리고 사람들이 도모하려고 드는 일에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다.”[5]
즉 결단을 내린 현존재는 자신의 양심을 부르고 들으며 자신의 불쾌한 책임을 염려하는 존재를 넘어 타인(공동현존재)에게 까지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이것으로 세계 안에서 서로 자유로운 관계 맺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이데거의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양심의 부름과 들음을 통해 현존재는 존재의 본래성을 실존적으로 결단하여 회복한다’[6]는 것이다.
[1] ‘Entschlossenheit’를 이기상은 ‘결단성’ 이라고 번역하고 소광희는 ‘결의성’이라고 번역한다. 결단성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되어 결단성으로 표기
[2] SZ 11판, 1967. 297쪽
[3]같은 곳
[4] Sein und Zeit, M. Heidegger, 이기상 역, 까치, 1998. 397쪽
[5]같은 곳
[6]『존재와 시간 강의』 소광희 지음, 문예출판사, 2003. 1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