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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인지

by 김준식

메타 인지


1. 90세


장인어른께서 올해로 구순이 되셨다. 하지만 여전히 정정하시다. 지난 금요일 90세 생신 행사가(사실은 가족끼리 밥 먹는 행사) 처가에서 있었다. 슬하에 5남매와 그 배우자들이 조촐하게 행사를 치렀다. 환갑이었던 적이 얼마 전인 듯한데 벌써 30년이 지나가버렸다. 하기야 내가 60을 훌쩍 넘겼으니……



90을 맞이하신 장인어른과 나의 인연은 올해로 35년째다. 세월이 꽤 흘렀다. 처가와 내가 사는 곳은 꽤 거리가 멀다. 하여 일 년에 두어 번 왕래한다. 아내에겐 그것이 평생의 미안함이다. 하지만 어쩌랴 35년이나 시간이 지났는데……



처가와 거리가 멀어서 그런지 처가 식구와 나는 자주 문화적 이질감을 느낀다. 젊을 땐 처가에 갈 때마다 그 문제로 마음이 무거웠으나 요즘은 처가에 가는 것을 계기로 나의 삶과 내 삶의 방향을 거시적으로 보는 기회로 삼는다.



2. 來蘇寺


생신 모임을 끝내고 다음 날 내가 사는 곳에서는 거리가 멀어 가기 어려운 내소사에 들렀다.



내소사를 품고 있는 산은 능가산이다. 능가산의 이름은 아마도 불교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능가산은 부처께서 능가경을 설한 산으로, 능가경(楞伽經, Lankavatara Sutra)은 여래장사상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불교 경전이다. 여래장사상이란 모든 중생들의 본질은 여래의 씨앗을 저장(藏)하고 있다는 사상이다. 능가경은 중국에 유입되면서 선불교 성립에 영향을 주었는데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올 때 가져와서 2조 혜가慧可에게 전수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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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에는 아름다운 문살이 유명하다. 바로 문살 하나하나가 화엄이다. 비록 세월에 의해 마모되었지만 조각칼을 든 목수의 손놀림이 문살마다 장엄을 새겨 놓은 것이다. 대웅전은 석가세존이 계시는 전각이다. 협시 보살(문수와 보현)과 함께 선정에 드신 세존께서 계시는 전각은 하늘과 어울려 그 자체로 또 다른 장엄이 된다.



문마다 조금씩 다른 꽃모양이 주는 느낌은 참으로 각별하여 이 건물을 짓고 이 문을 만들어 단 옛날 목수의 작업을 지금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법계연기와 사사무애의 화엄정신과 밀교적 영향의 능엄주가 녹아있는 문살의 꽃은, 어지러워질 만큼 어지러워진 오늘날의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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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는 범종각이 두 곳이며 우리 전통 무속을 수용한 당산나무가 법당 앞에 있다. 불교가 가지는 포용성은 민초들의 삶을 그나마 어루만졌을 것이다.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당산나무에 둘러쳐진 금줄을 보며 믿음과 신앙, 그리고 종교와 삶을 생각해 본다.



3. 현실



월요일 아침, 이제 40여 일 남은 정년, 그리고 60대 초반의 나, 마지막 기말고사 출제, 아이들과 수업을 하며 느끼는 기쁨, 이 모든 것을 감지하는 나. 일상을 넘는 일상이며 나를 넘는 나를 매 순간 경험한다.



오전 중에 어제 쓴 글 중, 달 모양에 대한 지속적인 이야기(사실은 5년 전 사진인데도 불구하고)를 들으며 이 역시 나의 범위를 넘는 나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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