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곧 올 것이라는데......
너무나 얕고 좁은 지식을 가지 내가 나의 범위 안에서 무엇인가를 窮究한다고 해서 확실하고 현명한 답을 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것저것 들은 바를 토대로 꾸며낼 수 있는 것이래야 겨우 한 줌도 되지 않는 논리일 것인데 (그 논리도 바닥이 훤히 보이는) 자연의 순리와 그 변화에 대한 이야기는 나의 범위를 확실히 넘는다. 하지만 살아온 지난날이 그러했고 또 살아갈 앞으로가 그러할 것처럼 나는 늘 자연이라는 이 공간에서 절대적으로 생존한다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다.
따라서 내가 존재하고 또 존재해야 할 이 자연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개인적인 일로 학교를 조퇴했다. 오후 3시쯤 일이 끝나고 집에서 쉬었다. 요즘 들어서 자주 이런 생각을 한다. 초속 약 220km로 나아가는 태양을 따라 보텍스 운동을 하며 따라가는 지구를 포함한 행성들의 움직임의 근원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면서도 각 행성들은 너무나 정밀하게 그리고 너무나 고요하게 움직이는 이 기막힌 우주와 세계를 조정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유신론자들은 틀림없이 神이라고 말할 것인데 도대체 그 神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분명한 답을 들을 수 없다. 대략 그들은 종교적 신념으로 얼버무리고 말거나 아니면 나의 무지를 지적하는데 그들이 지적하는 ‘나의 무지’에 대해서는 나는 늘 동의할 수 없다.
서양 사회에서 신이란 당연히 기독교적 신이거나 아니면 이슬람의 신일 공산이 크다. 그들은 오랫동안 이 신들에 대해 연구를 해 왔지만 21세기가 된 지금도 모호한 것은 변함없어 보인다. 이를테면 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의 90%는 매우 어려운 단어들의 나열과 그 단어들의 조합에서 오는 언어적 유희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이 말은 저들도 여전히 신의 존재 방식이나 신의 속성을 모르고 있거나 어쩌면 애당초 없는 것을 있다고 설명하는 데서 오는 언어적 피곤함일 것이라는 추측을 슬그머니 해 본다. 물론 유신론자나 기독교 신자들에게 이 이야기는 지옥불로 떨어질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반대로 동양은 신이 너무 많다. 그것은 역으로 신이라고 특정해야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심지어 동양에서는,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이 神이라는 경건한 단어 앞에 잡雜이라는 접두어를 붙이기도 한다. 그 잡신雜神은 이미 신이 가지는 절대적 이미지를 잃어버린 것으로서 흔히 우리가 사용하는 ‘이것저것’의 수준과도 비슷한 의미가 된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 무슨 경건하고 전지전능한 神性의 의미가 깃들어 있을 것인가? 어린 시절 동네 어귀에 서 있던 큰 회화나무에 매달아 놓은 새끼줄과 그곳에 끼워져 있던 붉은색, 노란색, 천 조각과 잡신의 가치는 동일할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동양에서도 이 신은 여전히 모호하다. 아니 일상화되어버린 특정 대상의 중요한 가치 모델로 존재하는 이름이 단지 神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그러면 과학이 神인가? 과학은 신과 가장 거리가 먼 개념이다. 그런데 계절 변화의 원리를 과학이 설명하기는 하지만 변화의 실체에 대해서는 과학도 여전히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에 미치니 이 자연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물론 나의 좁고 좁은 지식의 범위지만) 거의 없는 셈이다. 이 무지의 상황에도 아무런 불편 없이 60년 이상을 잘도 살아오고 또 다른 방법으로 窮究해 볼 생각도 의지도 없는 존재가 바로 나라고 생각하니 조금 슬퍼지는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