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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을 꿈꾸는 사진

by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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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을 꿈꾸는 사진

침잠 시리즈 중 사진 배길효


1. 사진


기원전 3세기에서 서기 6세기 사이에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리스토테레스의 Problēmata Physica(물리학 문제집) 내용 중에 ‘Camera Obscura’의 원리가 등장한다. 즉 pinhole image(바늘 구멍 이미지)에 대한 설명인데 이를테면 오늘날 사진기의 원리인 셈이다.


18세기 프랑스의 조제프 니세포르 니엡스(Joseph Nicéphore Niépce, 1765~1833)에 의한 최초의 사진이 찍히고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 당시 처음 오토크롬 방식(유리 건판 위에 천연 색소를 입힌 감자 전분 알갱이 필터로 사용하여 컬러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기술)의 컬러 사진이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회화의 역사는 위기를 맞이했다.


2. 추상 미술


19세기 중반경에 이르러 유럽인들은 산업혁명의 결과로 경제적, 사회적 변화를 겪는 것은 물론이고 미술, 문화, 사상 측면에서도 기존의 가치관과 크게 다른 변화를 갖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발달로 계급사회가 무너지고 신흥 부유층이 대두되고 그들이 집안 장식 혹은 지적 교양의 과시용으로 작품을 구입하게 됨에 따라 미술의 주제도 문학적이고 종교적인 주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인상주의자(Impressionist)로 불리는 화가들은 이젤을 들고 야외로 나가 자연을 새로운 회화 탐구의 주제로 삼게 되었다. 인상주의자들은 자연을 충실하게 재현하기 위해 노력과 열정을 기울이기보다는 시각적 경험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들은 빛과 대기에 의해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자연을 화폭에 담았다. 그것은 인간이 바라보는 시각 세계가 무엇인지 찾기 위해서였다.


서양 회화는 조토(Giotto di Bondone, 1267~1337)이래 수백 년 동안 명암대비법明暗對比法으로 사물의 입체감을 표현하였다. 자연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고려되어 오백여 년 동안 계승되어 왔다.


그러나 1830년경 마차를 타고 외출을 하던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1863)에 의해 우연히 명암대비법에 대한 허상이 깨어졌다. 들라크루아는 자신이 타고 가던 노란 마차가 숲 그늘 속에 들어갈 때 마차 그림자의 색이 검정이 아니라 짙은 보라라는 것을 발견한다. 즉 그림자와 그늘이 검정 혹은 짙은 갈색이 아니라 사물마다 독특한 색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한 사물의 그림자는 그 사물이 갖고 있는 색채의 보색이라는 이러한 발견은 회화에서 색채의 순수성을 발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들라크루아의 초기 실험단계를 거쳐 인상주의자들은 명암대비법 대신에 냉온대비법冷溫對比法을 이용하여 자연이 갖고 있는 색채의 순수성을 화폭에 담았다. 예를 들어 냉온대비법은 붉은색의 사물을 묘사할 때 어두운 그늘 부분과 그림자를 보색인 초록으로 표현한다. 이렇게 표현된 화면은 빛으로 가득 찬 자연색채의 순수성을 갖게 되고 동시에 화가의 관념 속에 구성된 특정의 이미지를 색채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밝고 어두운 명암에 의한 입체감이 사라짐에 따라 화면은 평면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인상주의 이후부터 회화는 캔버스의 형태, 물감의 성질 등의 여러 가지 제반 조건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오히려 이것들을 회화의 특징으로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다.


모더니즘 회화의 특징은 화면 자체의 물질적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모더니스트 화가들은 아무리 자연을 정확하게 묘사하려고 노력해도 회화는 결국 평평한 표면 위에 그려진 그림이라는 것을 자각하였다. 즉 회화가 자연을 재현(Representation)함으로써 결정되어 버리는 위계상 자연의 하부적 위치를 반대하고 재현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존재로써 회화에 대한 중요한 자각이었다. 자연의 재현은 더 이상 회화의 목적과 가치가 될 수 없다는 이러한 인식은 후기 인상주의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사진의 발명과 다시 교차하게 된다.


1910년경 여러 미술가들이 추상을 통해 새로운 미술을 실험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다양한 소재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미술의 존재와 목적에 중요한 의문을 가졌고 동시에 再現에 대한 막연한 의문을 넘어 완전한 결별에 이르려는 비슷한 열망들을 가지고 있었다.


3. 배길효의 사진


우연히 그를 알게 되었고 그의 사진을 몇 작품 보면서 막연히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왜냐하면 그의 사진에서 발견되는 추상성 때문이었다. 사진이나 회화는 원칙적으로 평면이다. 눈의 착시에 의해 입체감을 주는 것일 뿐, 평면의 한계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사진에서 나는 여러 개의 레이어(layer, 層)를 발견했다.


그의 사진전이 열린 사천미술관에 가서 나는 우리 사회가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깊이 실망했다. 그의 작품이 걸린 공간은 좁았고 그의 작품에 대한 이렇다 할 안내나 설명이 없었다. 적극적으로 예술을 향유하고자 하는 관객들이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장치는 필수적이다. 작품 한 점, 한 점을 투사하는 조명에서부터 관객들의 동선이나 관람의 각도까지 신경 쓰는 다른 나라의 전시장과 비교한다면 작가에게 미안하고 동시에 이런 분위기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어쨌거나 그의 사진은 주로 흑백이다. 그것도 극단적인 빛과 어둠을 대비시킨다. 그는 결국 사진을 통해 회화에 다가가려는 것이다. 그것도 나타나 보이는 장면 너머에 존재하는 추상성을 향하고 있다.


그의 작품 침잠沈潛 시리즈와 지의地衣 시리즈를 통해 그의 렌즈가 향하는 방향을 어렴풋이 추론해 본다. 그의 렌즈는 고정된 사물의 동적 이미지에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다. 지의류는 땅의 옷이다. 균류와 남조류, 그리고 녹조류 등이 복합적인 삶을 꾸미는 지의류가 돌이나 지표에 만들어 놓은 부정형의 무늬에 집중하는 것은 의도하지 않은 형상의 발견일 것이다. 역시 거기에는 시간의 레이어가 겹쳐있다. 렌즈를 통해 사물의 윤곽이나 색채를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렌즈를 통해 그 사물 속에 존재하는 시간과 변화, 그리고 절묘한 균형에 다가간다.


침잠 시리즈 또한 극도의 흑백대비이기는 하지만 강렬하지 않다. 이미 생명을 잃은 것들이 생명들 속에 있는 사태를 렌즈를 통해 캔버스에 옮겨 놓았다. 그렇지만 흑백 모두 톤 다운되어 애매함이 읽힌다. 시간에 의해 가라앉아 있는 풍경이다. 그렇다고 너무 깊이 내려가 있지는 않다. 적당한 지점에서 발견해 낸 이 시리즈 속에 어쩌면 작가의 고민이 있을 수도 있다.


4. 여전히 남아있는 생각들


작가가 추구하는 것과 나타난 표상이 가지는 필연적인 괴리에 대한 이야기를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의욕의 주체는 언제나 익시온의 회전하는 수레바퀴 위에 실려있는 것과 같으며 다나이스 자매가 밑 빠진 독에 끝없이 물을 퍼 넣는 것과 같으며 영원히 목마름과 배고픔에 시달리는 탄탈로스와 같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 지음, 권기철 옮김, 동서문화사 2020. 254쪽


사진을 보면서,

공간의 비현실성이 관람자에게 주는 자극은, 관람자 각자의 선험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관람자 입장에서는 보이는 것만 보고 좀 더 나아가 보고자 하는 것만 보게 되는 것이다. 화면에서 사물 만을 묘사하는 것은 풍경의 묘사보다도 더 극단적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작가의 노력 혹은 의도이겠지만, 관람자 쪽에서 발견하려는 것은 오히려 묘사된 사물이 가지는 인과관계일지도 모른다. 객관성과 인과관계는 일견 논리적이기는 하다. 작가 입장에서 객관성 추구의 결과로 사물을 선택하였다면, 그 사물이 그 공간에 존재하는 이유를 분명히 가지고 있을 테지만 관람자로서 나는, 화면에 나타난 사물의 인과 관계에 더 마음이 쓰이는 것이다.


2025년 7월 18일 오후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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