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論(2025.7.14.)

by 김준식


- 5개의 주제를 통해 현 상황을 논함 -


2025년 7월 2주째 주말을 보내고 난 월요일 아침, 교직 생활을 딱 6주 남겨 놓고 현재 나와 세상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다가올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래 5가지 기준은 독자적이거나 혹은 곁눈질을 한 결과여서 완전히 창의적이라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독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 아래, 여러 諸賢들의 高見을 참조했음을 미리 밝혀 둔다.


1. 편견과 상식


편견의 유용성은 집단 정체성의 강화에 있다. 그러나 편견은 항상 기준의 문제가 핵심이 된다. 기준은 개념정의가 어렵다. 기준의 기준이라는 모호한 점층의 논리와 마주하는 순간 그 어떤 기준도 기준이 되지 못하는 아이러니에 빠지고 만다. 따라서 기준에 따라 편견과 상식은 미세하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오늘부터 시작될 현 정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주고받을 그 모든 대사들은 희한하게도 지난 정부(더 나아가 그 이전 정부, 또 이전의 이전 정부 포함) 장관 후보자 청문회와 완전히 닮아있다. 딱 하나, 각각 공격과 방어의 위치가 달라졌다는 사실 외에는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의원들의 발언에서 조사 하나조차도 비슷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어느 것이 상식이고 어느 것이 편견인지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라 편견과 상식의 벽을 허문 절대의 부패와 탐욕, 오만과 무질서를 볼 뿐이다.


헤겔(G. W. F. Hegel)은 그의 책 『Wissenschaft der Logik』(논리학)에서 "Der gemeine Verstand ist der schlimmste Feind der Philosophie."라고 이야기했다. 굳이 해석하자면 “보통의 이해력(=상식이나 그 보다 낮은 이해)은 철학의 심각한 적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보통의 이해력을 상식이라고 볼 수 있는가의 문제인데 헤겔이 말한 ‘Der gemeine Verstand’은 고정된 판단이나 통념에 머무르는 태도를 말하는 것으로서 우리가 통상 상식이라고 말하는 ‘공동체의 공유 감각’(한나 아렌트의 언급)과는 큰 차이가 있다. 물론 이 고정된 판단이나 통념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범위를 넓히면 상식에 접근하는 수도 더러 있기는 하다. 하지만 ‘고정된’이라는 문제는 시간의 변화 앞에 반드시 무력해지고 만다.


결국 편견과 상식은 수직적으로나 수평적으로 엄청난 거리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 특히 정치적 상황에서는 그 거리가 없거나 혹은 등식이 성립하는 절묘한 상황을 마주한다. 이 문제가 오직 정치적 문제에만 적용될 것인가? 안타깝지만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교직 38년째인 나의 좁고 좁은 소견으로는 교육에 도사린 이 편견은 이미 상식을 넘어섰고 심지어 상식이 가지는 최소한의 근거조차 편견으로 가리는 일이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진영’이라는 이름으로 그도 아니면 ‘세력’이라는 이름으로 자행 혹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하나 하나 설명하자면 지면이 부족하다. 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들자면 ‘고교학점제’, ‘최소성취보장’, ‘학생인권조례’, ‘AIDT 교재’, ’ 학생 생활 기록부 기록 유형과 방법’, ‘학교 폭력 관련 입법’, 그리고 ‘수능제도’와 대입 전형 제도’ 등등.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편견의 유용성에 집중해 본다. 즉 집단 정체성의 강화 문제인데 이 집단 정체성은 유구한 역사성을 가진 인간 본성의 기본적 기작機作에 해당하므로 그 연원의 정당성을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다만 그 집단 정체성이 우리 삶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혹은 극단적 경향을 경계하기 위함인데 이미 우리 사회는 이 집단 정체성의 함정에 깊숙이 빠져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려울 듯싶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그 집단적 정체성의 함정으로부터 탈출해야만 하는 당위성도 존재하기 때문에 이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계속)


2. 중요도

3. 교육과 자유

4. (민주적) 교육 권력

5. 행동의 방향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