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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025 지락

靜寂無心(정적무심)

by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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靜寂無心(정적무심)


從溡降微瓣 (종시강미판) 빗물 따라 꽃잎 내려앉으니,

狹永抪別界 (협영포별계) 좁고 긴 다른 세상이 열리네.

寂寥本無心*(적요본무심) 고요함은 본디 마음 없음이라,

南風搖覑蕙 (남풍요편혜) 남풍에 난초 슬쩍 흔들리네.



2025년 7월 17일 오후. 하루 종일 거센 비가 오락 가락 한다. 학교 책상 위에는 화분 두 개가 있다. 아이비 화분과 난초 화분인데 비가 오니 밖에 비를 맞힐 생각으로 점심 시간에 난초 화분을 비를 맞을 수 있는 화단 경계석 위에 올려 놓았다. 이 난초는 지난 해 꽃을 피워 내 시의 소재가 된 그 난초다. 아이비는 며칠 전 물을 흠뻑 주어 내 놓을 필요가 없었다. 8월 퇴직 때 다른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데 아무도 지원자가 없다. 집에 가져 갈 생각도 없다. 모두 놓고 갈 생각이다.



7교시 수업을 마치고 화단에 내 놓은 난초 화분을 들여다 놓으면서 보니 화단에 있는 배롱나무 꽃잎이 난초 위에 내려 앉아 있다. 스마트 폰 카메라로 어렵사리 사진을 찍으니 이 모습이다. 이 모습을 보면서 글을 지었다. 한 없이 고요한 가운데 배롱나무 꽃잎과 난초 잎이 만났다. 배롱나무 꽃잎은 빗물을 타고 난초 잎 위에 내려 앉았지만 두 사물은 지극히 고요하고 평화롭다. 다만 남풍이 슬쩍 흔들고 갈 뿐이다.



* 정적무심은 불교적 이미지도 있고 도가적 이미지도 동시에 있다. 『장자』 ‘제물론’에 처음에 이런 말이 있다. “形固可使如槁木 而心固可使如死灰乎”(형고가사여고목 이심고가사여사회호) 풀이하자면 “육체는 진실로 시든 나무와 같아질 수 있으며 마음은 진실로 불 꺼진 재와 같아질 수 있는 것입니까?”(안성자유顔成子游가 남곽자기南郭子綦에게 묻는 말이다.) 이 때의 상황을 정적무심 상태로 풀이하기도 한다.


*적요본무심: 중국 남송시대의 선승 야보도천冶父道川의 게송에서 차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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