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철학의 시작
중학교 철학이라는 책 이름을 걸고 철학을 논의하면서 많은 혼돈과 혼선 속에서도 마침내 4권까지 책이 이어졌고 스스로 정한 마지막 단계인 ‘타자’ 철학 문제에 이르렀다. 방향은 어찌어찌 잡았지만 여전히 길을 잃을 때가 너무 많았다. 중학교 철학 1은 ‘나’를 찾아서, ‘존재’에 대하여, 자유, 이성, 권력에 대해 가능한 한 아주 짧게 이야기했다. 1권을 마치고 나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새롭게 생겼다. 바로 동, 서양 철학사 전체를 관통하는 ‘변증’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어 진 것이다. 그래서 중학교 철학 2는 ‘변증의 산맥’이라는 부제아래 변증의 역사와 논리를 이야기했다.
중학교 철학 3은 중학교 철학 2를 쓰면서 약간 소진된 느낌이라 한 동안 마음을 잡지 못하다가 2024년 1월 겨울 방학이 되어서야 비로소 원고를 시작하여 5월쯤 출판사에 원고를 넘길 수 있었다. 3권은 ‘인식론’이다. 인식론은 여러 철학 논의의 배경이 되는 것이므로 반드시 한 번은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스스로 배우며 글을 쓰는 과정이 어려웠지만 동시에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진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모호한 그 실체에 다가선다는 느낌은 다른 어떤 일보다도 더 벅찬 감동이었다. 그렇게 3권을 쓰고 나니 정말 이제는 그만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의 약속이 5권까지 펴 낸다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쓰는 힘든 과정과 그로부터 오는 자괴감이나 혼돈 등이 더 나를 지배했기 때문이었다.
2024년이 끝나갈 무렵 4권의 구상을 끝내고 글쓰기를 시작하여 2025년 3월 말쯤 탈고를 하고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 4권은 실존이다. 실존하는 우리가 그 실존을 논리적으로 증명해 내야 하는 작업이니 생각만으로도 벌써 어렵다. 마치 내가 밥을 먹고 있는데 밥을 먹고 있다는 그 사실을 논리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것과 같다. 밥 먹는 것이야 우리 눈으로 보는 즉시 이해되지만, 우리의 실존은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다. 그러나 엄연히 실존하고 있으니 논리적으로 그 자명한 사실에 다가서는 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중학교 철학 4권 쓰기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하루 종일 10페이지 정도 글을 썼는데 그 다음날 읽어보니 논리나 서술구조의 오류를 발견하고 하는 수 없이 컴퓨터의 DEL 키를 눌러야 하는 일을 여러 번 겪으면서 좀 더 정교하고 좀 더 타당한 글쓰기로 나아갈 수 있었다.
마침내 4권이 나오고 이제 마지막 5권이 남게 된 것이다. 5권의 주제는 ‘타자’다.
중학교 철학 1, 2, 3, 4의 내용이 보여주듯이 철학의 역사는 자연에서 시작되었다. 당연히 인간 자신도 자연이었으므로 처음부터 인간 스스로의 문제도 철학의 중요한 과제였다. 하지만 자연에 존재하는 객관적 대상으로서의 인간이 아닌 주체적이며 주관적인 인간 정신 작용을 구체적 철학의 대상으로 삼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물론 고대 서양 철학, 특히 플로티노스 이전까지의 철학에서는 주체적이며 주관적인 인간 정신에 대한 탐구가 어느 정도 있었지만 뒤를 이어 등장한 중세 기독교 철학에서는 다만 인간은 신의 피조물로 전락하였고 당연히 그 인간에게 깃든 영혼의 문제는 오직 신의 섭리라는 것에 의해서만 작동되는 것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거기에 철학적 논의가 개입할 자리는 좁아지거나 사라지고 만 것이다.
동양에서는 서양과 달리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비록 다른 방식이기는 하지만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왔는데 특히 불교나 유교의 성리학 등에서 인간 정신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논의하는 과정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유산은 근대 이후 서양 철학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중학교 철학 3, 4에서 다룬 인식론이나 실존의 문제에는 불교 철학과 연결되는 부분이 많은 것은 이런 상황의 반증이기도 하다.
칸트와 그의 유산을 계승한 신칸트주의 그리고 마침내 실증주의 철학의 정교화 혹은 반성으로 나타난 현상학과 실존 철학은 지금까지 근대 서양 철학에서 중요한 과제로 떠 오른 ‘인간 정신’ 자체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었다. 외부적 대상으로 존재하든 주체적으로 존재하든 현재 나타난 인간의 실존을 철학적으로 접근하여 증명해 내는 일은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했고 더불어 철학의 시선을 좀 더 깊이 그리고 지금과는 또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역할을 했다. 마침내 철학의 시선은 나의 존재와 존재의 타당성을 증명하고 논리적으로 구조화하기 위해 타자(Others)라는 특별한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이를테면 자연으로부터 시작된 독자적인 인간 이해를 넘어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발견되는 인간 이해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타자 철학은 철학적으로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는 것으로서 인간 내부의 문제가 결코 독립적이며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생성되고 소멸될 것이라는 거대한 가정을 탐구하는 과정이다.
그 타자의 문제를 중학교 철학 5권에서 다루고자 한다. 부제는 ‘타자의 역설’이다. 그 타자 철학의 시작점에 앞서 언급한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플로티노스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