發散*
山靜晝夜短*(산정주야단) 산은 고요하고 해는 짧아져,
末那漫放窮*(말나만방궁) 집착만 천지에 흩어지네.
白雲自閒來 (백운자한래) 흰 구름은 절로 한가롭고,
庸劣難整中 (용렬난정중) 어리 섞어 마음만 어지럽다.
2025년 9월 21일 오후. 시속 200km 이상으로 달리는 열차 안은 의외로 고요하다. 가까운 풍경들은 맹렬하게 오가지만 먼 산은 한없이 고요하다. 며칠 동안 여러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읽었던 책도 있고 새로운 책도 있다. 글쓴이들은 저 멀리 그리스 사람도 있고 가까이는 당나라 사람도 있으며 우리나라 사람도 있다. 그들과 신중하게 마주하고 그들의 생각을 따라가면서 나의 태도를 유지했다.
독서를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식이나 정보를 얻기에 이미 독서는 그 효용이 덜하다. 독서는 결정적으로 태도라고 생각한다. 글쓴이와의 진지하고 단단한 만남에 임하는 우리의 태도가 독서다. 글쓴이에게서 무엇을 배우겠다는 생각은 잠시 내려놓고 글쓴이로부터 그의 이야기를 듣는 진중함에 더 마음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저런 생각을 끌어 모아 글로 옮긴다. 진주가 약 100km 정도 남았다.
* 발산: 수학의 발산은 아니다. 여기서 발산은 영어 Emanation으로서 라틴어 ‘~에서 흘러나오다’ 또는 ‘~에서 쏟아져 나오다’를 의미하는 ‘emanare’에서 유래한 말이다. 나의 생각이 슬며시 흘러나옴을 의미한다.
* 중국 남송의 문인 나대경羅大經(1196~1242)이 쓴 학림옥로鶴林玉露에 나오는 이야기를 용사함.
* 말나: 불교에서는 사람의 몸을 육근(6根), 즉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의 여섯 기관으로 형성돼 있다고 생각했다. 육근이 각각의 감각 대상인 육경(6境)을 만나면 각각의 감각을 통해 각각의 인식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인식을 육식(6識)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이 그것이다. 초기불교는 인간의 마음을 보통 육식 정도로 인정했다.
그런데 불멸 후 거의 천 년이 지난 4세기경 유식불교가 형성되면서 제6식 너머 존재하는 인간 의식에 대한 견해가 생겨났다. 유식 불교에 의하면 6식까지는 표층의식이다. 거기서 좀 더 깊이 들어간 의식으로 제7식 말나식, 그리고 말나식보다 더 심층의식이 제8식 아뢰야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말나식은 모든 감각이나 의식을 통괄해 ‘자기’라는 의식을 낳게 하는 마음의 작용이다. 즉 ‘내가 존재한다’, 동시에 ‘이것이 나다’라는 아상(我相)이며 나아가 이기심(egoism)으로 나타나는 의식으로 유식에서는 무명(無明)의 뿌리라고 설명한다. 여기에서는 집착으로 풀이했다. 유식 불교의 7식, 8식은 서양 철학과 연결되는 교량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