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와 신탁

by 김준식
Danae_(1527).jpg Danae, 1527. Oak , 113.5x 95 cm Alte Pinakothek

지금 장자께서 보시는 그림은 16세기 플랑드르 사람 'Jan Mabuse'(본명은 'Jan Gossaert', 1478~1532)가 그린 ‘다나에’(1527)인데 여자의 한쪽 가슴을 드러낸 다소 묘한 분위기의 그림이다.


“그림 속의 여자는 어떤 처지인가?”


“지금 갇혀 있습니다.”


“누가 가뒀는가?”


“그녀의 아버지가 가뒀습니다”


“사연이 있겠지......”


사연을 묻는 것인가? 말끝을 흐리는 것으로 보아 묻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으로 묻기 전까지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 더 좋다고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자네는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하나?”


“저 여자를 가둔 아버지 말씀인지요?”


“……”


세상에 모든 아버지를 이야기하시지는 않겠지……


“신탁 때문에 자식을 가둔 어리석고 비겁한 아버지를 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열자가 스승 호자에 대하여 무당 계함에게 속은 것과 비슷한가?”(응제왕)


“그것보다 훨씬 더 심합니다.”


“저런! 하기야 자식을 가둘 만한 일이니 ……”


“그런데 그림 속에 내리는 저 비는 무엇인가?”


금색의 비가 '다나에'에게 떨어지고 있는 부분을 보신 모양이다. 이 때다 싶어 저렇게 탑에 갇힌 사연까지 일사천리로 말했다.


“그림 속 금비에 대한 이야기는 신화와 연결됩니다. 신화에 의하면 아르고스의 왕인 아크리시우스는 장차 태어날 손자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신탁을 받았고, 그로 인해 그의 딸 ‘다나에’는 결혼도 하기 전에 비정한 아버지의 명령으로 그림과 같이 높은 탑 안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자 ‘다나에’의 미모에 홀린 바람둥이 제우스 신은 ‘황금 비’로 변하여 지붕 틈으로 스며들어 내립니다. ‘황금 비’는 감금된 공주의 무릎 위에 걸쳐진 천으로 떨어져 그녀를 수태시키게 됩니다.”


숨도 쉬지 않고 빠르게 말씀드리니,


“아직 이야기가 남았나?”


“아닙니다.” 다소 머쓱해졌다. 장자께서는 구체적인 이야기에는 사실 별 반응이 없으시다.


“그래 그 신탁은 어찌 되었나?”


“가둬 놓아도 결국 이루어진 셈입니다.”


“자네는 ‘신탁’이라는 것을 어찌 생각하나?”


“인간의 나약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네는 나약하지 않고?”


“무엇을 나약하다고 하는지 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지 않을까요?”


애써 내가 나약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 충동적으로 말해 버렸다.


“두려움이지…… 지인(至人: 덕이 높고 도를 이해하는 사람)은 어떤 일에도 두려움이 없다네.”(달생)

장자께서 기준을 두려움이라 하시니 곧장 승복했다.


“그렇다면 저는 나약합니다.”


“저 여자의 아버지는 신탁이 두려워 자식을 가뒀지만 그래도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을 걸세”


“결국 신탁대로 이루어졌으니 아마 평생을 두려움 속에 살았을 겁니다.”


“그런데 말일세…… 제우스는 누구인가?”


“서양 신화에서 가장 강력한 신의 이름입니다.”


“…… 서양 사람들에게 신은, 두려운 존재가 아닌가?”


“두려운 신도 많습니다.”


“신은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길흉화복에 개입하지 못하니, 두려움은 오로지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 낸 일 아니겠나?”(달생)


“사람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 어떤 것도 없지만 마치 껍데기처럼 남아있는(경상초)것에 나약한 인간들의 마음이 흔들리니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비슷한 모양일세!”


“……”


“미술관 문 닫을 시간입니다.”


“저녁 먹으러 가세!”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