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2025 지락

2025년 한시집 '지락' 발문跋文

by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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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한시집 지락 발문跋文


지구가 태양을 도는 속도, 즉 공전 속도는 초속 약 30km다. 그야말로 눈썹이 휘날리는 속도인데 어찌 된 일인지 털끝에 미동조차 없다. 기이하지만 사실이고, 사실이지만 참으로 기이하다. 물론 과학적으로 이렇고 저렇고 한 이유가 없지는 않지만 과학적 사실이 모든 것의 해답이 될 수는 없다.


지구가 그렇게 태양을 한 바퀴 다 돌면 우리에게 1년이 지나간다. 이 역시 참 어이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1년이 누구에게는 다시 오지 않는 1년이 될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지나간 1년과 다름이 없고, 또 누구에게는 새록새록 모든 것이 쌓이는 1년일 수 있다.


언감생심! 나는 늘 세 번째 1년이기를 빌며 한 해를 시작하고 또 보낸다. 하지만 언제나 어림없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어리석게도 또 해마다 그리 될 수 있기를 갈망하며 삶을 살아왔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그러니까 2014년) 한 해 동안 쓴 한시를 묶어 책 모양으로 만들기 시작한 일이 지난해 10년을 맞이했고(천운天運) 올해는 11번째 책을 묶는다. (지락至樂)


반풍수 한시를 쓰면서 한시 전문가들로부터 사이비라고 비난을 자주 받는다. 그러함에도 이 일을 멈출 생각은 전혀 없다. 나의 한시는 정확한 기식起式과 평측平仄안배를 지키지 못하거나 또는 지키지 않는다. 그 만한 능력도 없지만 그렇게 따를 의향도 별로 없다. 다만 20자, 혹은 28자에 그 순간의 마음을 담고 용사用事를 밝히며 최소한의 압운押韻 정도만 지킨다. 특정 순간의 마음을 갈무리하는 방식으로는 이만한 것이 없다. 한글 시도 있으리라! 하지만 나에게는 한글 시를 다듬는 그 재주가 거의 없다. 압축된 한자를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편법이라고 해 두자. 아니 편법이다!


나는 나의 한시 속에서 매우 오만 방자하다. 한 줌도 되지 못하는 알량한 지식과 고둥 속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세상에 모든 진리를 아는 것처럼 거드름을 피우고, 세상에서 가장 잘 난 것처럼 고고하고 삶을 달관한 듯이 글을 쓴다. 하지만 그 방식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은 이 험하고 이상한 세상을 살아 내기 위한 나의 방식이니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변명한다. 너무 편리한가?


2025년은 글쓰기가 지난해 혹은 그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 아마도 10여 편 정도 줄어들지도 모른다. 이유야 천 가지 만 가지가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나의 게으름이다. 독서를 게을리하고 생각을 게을리하고 마음 정리를 게을리하니 글이 나올 수 없다. 반성한다. 2026년에는 더 어려워질 듯 하지만 지난 나의 삶을 돌이켜 단 한 해도 만만한 해는 없었다.


이렇게 만든 한시집의 이름은 항상 『장자』에서 가져온다. 개인적으로『장자』를 공부하게 된 시기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20세 전후(아마도 1980년 전후)의 일이니 깊이는 없었으리라. 그러다가 2013년부터 나의 좁은 공부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에게 『장자』강의를 하면서 새롭고 깊이 공부할 수 있었다. 내편과 외편 전체 내용을 한 문장 한 문장 깊이 해석하고 그것과 관련되는 여러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강의를 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진행한 강의는 약 3년 뒤인 2016년에 이르러 끝이 났다. 처음 36명으로 시작했지만 3년 뒤 마지막 강의까지 남은 수강생은 겨우 10명 남짓으로 기억한다. 어쨌거나『장자』는 매우 중요한 내 생각의 원천源泉이다.


남은 10월, 최선을 다해 몇 편의 글이라도 더 써야 한다. 한글날에 한시 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참 이상하다.


2025년 10월 9일 한글날 중범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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