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가 경계로 나타나지 않는 것!

by 김준식

경계가 경계로 나타나지 않는 것

Doppelbildnis Marées und Lenbach, Oil on Canvas. 54.3 × 62 cm. Neue Pinakothek

그림을 보고 무엇인가를 느끼는 것은 지극히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늘 경계는 존재한다. 경계는 일종의 범위일 수도 있고 또는 한계일 수도 있다. 독일 뮌헨의 피나코테크 미술관에 있는 그림을 보고 장자께서 느끼는 것과 내가 느끼는 것은 너무나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좀 거 거시적으로 본다면 큰 범위 안에 함께 있을 수 있다.


두 명의 남자가 겹쳐 있는 묘한 초상화를 보시더니 장자께서 물으셨다.


“저 그림은 누구를 그린 것인가?”


“그림을 그린 자신과 친구를 그린 것입니다.”


“둘의 얼굴이 왜 겹쳐 있나?”



장자 말씀 대로 두 개의 얼굴이 겹쳐 있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어렵지만, 뒤 편 얼굴이 더 밝게 빛나고 있고 앞 쪽 얼굴은 어둡게 처리되어 있다. 뒤편 얼굴은, 얼굴의 삼분의 일이 가려져 있지만 보이는 얼굴만으로도 충분히 전체적인 그의 표정을 짐작할 수 있다. 희미하게 웃는 것 같은, 그러나 약간은 묘한 여운을 남기는 얼굴의 주인공은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다.


그림을 그린 ‘Hans von Marées(한스 폰 마레, 1837~1887)’는 1837년 지금의 독일 서북부 ‘Wuppertal(부퍼탈)’의 일부이지만 1929년까지는 독립적인 도시로 있었던 ‘Elberfeld(엘버펠드)’출신이다. 부유한 은행가 집에서 태어난 그는 10세 때 ‘Koblenz(코브렌츠)’로 이주하여 거기서 김나지움(초등학교)을 졸업하고 1855년까지 베를린 아카데미에서 미술 교육을 받는다. 베를린에서 ‘마레’는 당시 유명한 판화가였던 ‘Carl Steffeck(칼 스테펙, 1818~1890)’에게 사사하고 1855년 아카데미 졸업과 함께 군에 입대한다. 제대하고 뮌헨으로 간 ‘마레’는 이 그림의 또 다른 주인공인 ‘Franz von Lenbach(프란츠 폰 렌바흐, 1836 ~ 1904)’와 만나게 된다.


사실주의 화가였던 ‘렌바흐’와 초상화를 주로 그렸던 ‘마레’는 ‘Adolf Friedrich von Schack(아돌프 프리드리히 폰 샤크, 1815 ~ 1894)’백작의 주선으로 이탈리아로 보내진다. 이 시기에 그는, 그의 삶 전체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여러 예술적인 인사와 교류하였다. 두 개의 얼굴이 중첩된 이 그림은 이태리로 떠나기 한 해 전에 그린 것으로서 20대 중반을 넘어선 빛 나는 두 청년의 모습, 특히 뒤 쪽에서 스스로 빛을 받아 묘한 웃음을 띠는 ‘마레’의 표정은 어쩌면 다가올 미래의 삶에 대한 자신감이었을지도 모른다.


“앞에 있는 친구와 자신이 비슷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닐까요?”


사실 나도 이 부분이 늘 의문이었는데 장자께서 그 지점을 물으시니 흠칫 놀랐다.


“본래 도는 경계가 없는 법이지……친구와 자신의 경계가 없으니 저렇게 그려도 자신이 그려진 것과 같다고 생각한 것이겠지!”(제물론)


초상화에 자신의 얼굴과 다른 사람의 얼굴을 동시에 그리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이다. ‘마레’의 이러한 작업은 이 그림 외에도 하나가 더 있는데, 조각가였던 Adolf von Hildebrand(아돌프 폰 힐데브란트, 1847~1921)와 그린 자화상도 있다.


이 그림에서 ‘마레’는 자신의 이미지와 타인의 이미지를 겹치게 배치하였다. 이는 자신의 이미지와 친구인 '렌바흐'가 가진 이미지의 교점이 존재하는 상황, 즉 어떤 부분에서 이 사람과 나의 생각은 완전히 동일할 수 있다는 생각의 표현으로 짐작된다. 더 나아가 '렌바흐'와 '마레' 자신의 이미지를 겹침으로써 두 사람의 이미지 외에 또 다른 다중적 이미지를 창조하고, 거기서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려는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장자께서 한 참 생각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신다.


“경계가 없는 경계는, 경계가 경계로 나타나지 않는 것이지!”(지북유)


“좀 더 설명해 주시지요”


“드러나지 않은 것이 나타나고 나타난 것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라네!”(지북유)


장자의 말씀을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그림을 그린 마레의 얼굴 중에서 나타내고 싶은 부분은 앞의 렌바흐에 의해 나타나고 나타내지 않고 싶은 부분은 렌바흐가 가리고 있다는 이야기 같은데……


장자께서는 벌써 저만큼 가시고 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