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조화 속에 머물러 있음.
미술관에 배치된 소파에 몸을 깊숙하게 맡기고 있으니 졸음이 쏟아진다. 비몽사몽간에 옆에 앉으신 장자께서 말씀하신다.
“피곤한가?”
“아닙니다.”
“……”
벌떡 일어서자 장자께서도 일어서시더니 무지개가 보이는 그림 앞에 서셨다. 그림 속 모녀는 뒤돌아서 있고 장소는 알 수 없지만 화단은 잘 정리되어 있다. 그 모녀가 보고 있는 것이 바로 무지개다. 무지개라는 단어 속에는 비雨(영어 Rain, 독어 Regen)가 들어있으니 당연히 비가 온 뒤의 풍경이다.
그림을 그린 사람은 Leopold Karl Walter Graf von Kalkreuth(1855~1928)이다. 이름이 증명하듯 그는 독일 명문가 출신이다. 독일 이름에 von이 있으면 귀족이라는 의미이다. 정확히, '어디 어디 출신인', 또는 '어디 어디를 다스리는'이라는 뜻이다. 당시 칼크루이트는 바이마르 지역의 명문가였다. 백작이었던 그의 아버지 Stanislaus von Kalckreuth 역시 유명한 풍경 화가였다. 그런 이유로 당연히 아버지로부터 미술 수업을 받았고 이어서 바이마르와 뮌헨의 아카데미로 진학하여 그림을 배웠다.
칼 크루이트의 그림은 자연에 대한 경배처럼 느껴지는데 이런 화풍은 그 뒤 독일 인상주의 화풍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그는 당시의 주류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유명 인사의 초상화와 세속적 풍경을 전시하는 화랑과 미술관으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작품을 전시하는 이른바 독일 분리파 운동의 창시자였다.
“무지개를 보는 것인가?”
당연한 이야기를 물어볼 때에는 당연한 답을 기다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최소한 엄마는 무지개를 보는 것 같습니다.”(모녀로 추정하는 것 자체가 나의 판단이니 이것을 장자께서 문제 삼을 수도 있다.)
“나도 그리 보았네. 아이가 무지개를 보기엔 키가 너무 작으니 아마도 자신의 눈높이에 있는 꽃들을 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네”
관찰력이 대단하신 장자가 아닌가! 그림을 가만히 보니 아이의 고개는 뒤로 젖혀지지 않았고 심지어 정면을 보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자네는 조화가 뭐라고 생각하나?”
뜬금없이 조화라니……
“어울리는 것 아닌지요?”
“그렇지 어울림도 조화지!”
“그런데 말일세……무지개의 각각 다른 색은 서로 경계가 모호하지만 분명히 다르고, 분명히 다르지만 그 경계가 모호한데 사람들은 각각의 색을 나누어 이름을 정하니, 이는 분명 조화롭지 않는 일이 아닌가?”
“각각의 색 이름을 정하는 것이 조화를 깨는 것인지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하늘의 도는 경계 없는 세계에 맡기는 것인데(제물론), 사람들이 애써 경계를 지우니, 이는 하늘의 도와 멀어지는 것이지!”
사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장자께서 하신 말씀과는 무관한 의도로 이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나의 판단으로) 엄마와 손잡고 서 있는 아이 주위로 이제 막 피어나는 꽃잎들과 나뭇잎들로 보아 봄(이 역시 나의 판단이다.)이 한창이다. 한줄기 비가 쏟아진 뒤 멀리 무지개가 보인다. 정원에는 흰색과 붉은색의 튤립이 조화를 이루고 황토색이 그림을 안정시킨다. 붉은 지붕을 배경으로 꽃이 피고 있는 목련과 그 밑으로 횡으로 길게 보이는 울타리에는 붉은색과 흰색의 꽃들이 조화롭게 피어 있다. 정원 한편에 아주 조금 노란색 꽃이 보이지만 아직은 활짝 피기 전이다.
인물 뒤 쪽에서 비치는 햇살은 앞 쪽으로 나 있는 긴 그림자로 미루어 볼 때 석양에 가깝다. 여름이 오면 푸른 잎으로 무성해질 정원에 서 있는 큰 나무 주위에 만들어 놓은 나무 의자에 물기가 그대로 햇빛에 반사되고 있다. 그 나무 앞 쪽으로 나 있는 출입문은 옛날 우리의 기억 속에 있는 사립문처럼 문이 있으나 문이 아니었던 것처럼 서로가 소통하고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 같아 매우 정감이 간다.
봄날 비가 오고 난 뒤, 해가 기울고 있어 쌀쌀해지는 온도 탓에 엄마는 푸른색 숄을 걸치고 고개를 뒤로 젖혀 무지개를 쳐다보고 있다. 엄마 손을 잡고 서 있는 소녀는 너무나 키가 작아 무지개가 보이지 않아서인지 고개를 아예 대문 쪽으로 돌리고 있는데 꽃을 보는지는 알 수 없다.
“하늘의 도에 대해 좀 더 말씀해 주시지요”
“이를테면 말일세…… 하늘의 도는, 변화를 따라 어떤 사물이 되었지만 그 사물 역시 아직 알지 못하는 변화를 기다릴 뿐이라네!” (대종사)
“그러면 저 무지개도 지금은 여러 색으로 보이지만 또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모르니 색을 정하는 것은 조화가 아니라는 말씀인지요?”
“그렇게 말하기도 곤란하지…… 순일純一한 도는 말일세……단지 조화 속에 머물고 있음이라네.”(재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