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결혼식

by 김준식

결혼…결혼식


최근 여기저기 혼담을 자주 듣는다. 개인적으로 내 딸도 혼담이 있다. 하여 결혼을 생각해 본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아마도 약탈의 방식으로 시작되었을 남, 녀의 결합은 문명의 발달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금의 결혼식조차도 어쩌면 불과 몇십 년 뒤에는 매우 후진적인 방식으로 여겨질지도 모를 일인데 문명의 방향과 발전의 속도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남, 녀의 사랑이 전제가 된다고는 하지만 사실 결혼은 일종의 계약일 수밖에 없다. 흔한 표현대로 쌍무적 계약이 결혼의 본모습이라는 것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인데 이렇게 본다면 결혼식은 그 계약의 성립에 대한 일종의 집단적 동의이거나 혹은 수긍에 가까운 의식으로도 볼 수 있다.


사회학의 관점, 그리고 더 나아가 인류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가지는 성적 갈등의 해소를 담보로 하고 동시에 사회 구성원의 확대 재생산의 임무까지 수용하며 소규모 구성원의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단선적인 관계에서 출발하여 다양해진 사회기반의 구축까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 이해될 수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2~30대가 결혼의 적령기라는 것은 다분히 경제적 문제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결혼이라는 본질적 의미와 연결시켜 본다면 이 연령대의 결혼은 결혼 생활의 시작을 매우 어렵게 만들 소인이 있다. 이를테면 2~30대의 남, 녀는 이미 개인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거의 모든 것이 형성되어 버린 연령대이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의식을 통과하는 순간 자신의 영역을 침해당하지 않으려는 갈등이 시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혼식을 거치면서 이 갈등구조는 다소 누그러지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지만 때론 증폭되어 두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는 경우도 허다하게 들어서 알고 있다. 물론 이혼이라는 제도가 있지만 그 제도에 아직은 우리가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사회적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것 역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결혼식을 거치고 나면 남녀는 합법적(물론 법률적으로는 사실혼이지만)으로 부부가 되어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온 다양한 금기가 해제되는데, 예를 들면 법률(민법)에서는 오히려 동거의 의무를 명시하여 어제까지 금지 혹은 금기시해 오던 성적인 결합을 강요(?)하고 있다. 얼마나 드라마틱한 변화인가? 결혼 전의 동거에 대하여 도덕의 기준을 들이대며 금지를 주장하던 태도가 간단한 의식을 거친 뒤에는 갑자기 의무를 강요하는 태도로 바뀌다니!! 결혼식이래야 길어도 1시간, 그 사이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별 다른 저항 없이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위대한 철학자 Bergson이 마지막으로 집필한 책, 『Les Deux Sources de la Morale et la Religion(도덕과 종교에 대한 두 개의 원천)』의 이야기를 참고해 보자.


그는 도덕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정적 도덕과 동적 도덕이다.


정적靜的 도덕은 책무責務의 도덕이다. 이 도덕은 ‘닫힌 사회’에서 일어나며, 과거의 기성 가치들을 보존하는 것이다. 그것은 금기禁忌나 관습의 준수, 고정된 기준의 준수 등을 내포하고 있다.


정적 도덕이 없다면 사회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여러 가지 충동이 뒤죽박죽 얽힌 혼란 속에서 해체되고 말 것이다. 어떤 한 집단의 관습들 중 어느 한 가지 것이 도전을 당하고 동요할 수 있을지라도, 공인된 책무들의 전체는 의무의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이 의무의 힘이 없으면 사회의 붕괴가 곧 뒤따를 것이다. 제도로서 그리고 정적인 도덕으로서 결혼은, 아마도 이 범주에 들 것이다.


그런가 하면 동적動的 도덕은 동경憧憬의 도덕이다. 그것은 그 어떤 기성의 사회질서와도 무관하다. 이를테면 하나의 변이물질(술을 만드는 효소나, 누룩처럼)처럼 그 사회 속에서 새로운 것이 생겨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그것은 정적 도덕처럼 개인에 대한 지속적인 압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속에서 끊임없는 변화를 가정하는 도덕이다. 결혼 생활 자체에 대한 도덕적 상황은 이 동적인 도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결혼을 유지하는 우리의 의지와 관련하여 해석될 수 있는 도덕적 상황이다.


동적인 도덕은 또한, 목적이 확실하지도 또 뚜렷하지 않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이상을 바라보고 이 이상을 고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상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고, 또 가끔은 관습과는 양립할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가끔 이러한 도덕의 충돌은 개인의 내부적 충돌로 이어지기도 한다.


종합해 보면 결혼은 이 두 개의 도덕이 혼재되어 있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책무와 금기가 요구되는 상황과 변이물질과 이상의 세계가 공존하는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현실의 세계가 어쩌면 결혼이라는 제도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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