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밈, 진실, 사실, 실존
생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광고할 목적으로 나의 모습을 찍었다. 넓게 본다면 인생 자체가 광고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의도를 가지고 이 일을 도모했으니 이런 일은 난생처음이 맞다. 사진은 피사체를 빛과 섞어 감광해 내는 작업이다. 여기서 섞는다는 표현은 화합이 아니라 혼합에 가깝다. 빛에 의해 피사체의 모습, 혹은 외형은 달라 보일 수는 있지만 본질이 달라질 가능성은 없다는 의미이다.
나라는 객체는 사실 사진에 적합한 인물은 아니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나는 매우 깡마른 체격에다가 키조차 크다. 하물며 인물이 못생긴 것은 고사하고 언제나 차가운 느낌이 나는 인상인데 놀랍게도 부드럽게 웃어야 하는 의무가 있는 사진 촬영이니 나의 고충이 참 컸다.
촬영하시는 분의 말씀에 기대어 본다면 처음엔 많이 굳어 있다가 점차 좋아진다는 말에 가벼운 희망을 걸고 나의 내면에 무성한 고민과 걱정과 예리함을 잠시 누그러뜨리려고 꽤나 노력했다. 말미에 조금 좋아졌다는 이야기가 많은 위안을 주었는데 사진은 어차피 진실은 아니지 않나?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은 자신이 이상적으로 상상하는 모습과 차이 때문에 대부분 놀라거나 거부하려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Uncanny effect[1](자신과 닮기는 했지만 정확히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불안감이나 기괴함의 감정)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라는 것 자체가 매우 모호한 기준으로 설정된 것이어서 내가 나를 마주하는 것이 사실을 마주하는 것이라고 말하기에도 애매한 구석이 많다.
결국 나는 몇 조각 생체조직의 구성물이다. 단지 영혼이라는 것이 스며 있어 이런 생각과 판단에 이르렀을 뿐, 그 어떤 고차원적 정신작용의 결과는 분명 아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나를 객체로 한 사진은 나와 무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나에게 종속하는 것도 아닌 … 이미 나라는 객체를 떠난 또 다른 실존의 모습일 수 있다.
나를 촬영해 주신 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1]에른스트 안톤 엔치에 의해 고안된 이론으로 프로이트에 의해 확립된 심리학적 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