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 10주기
與林* 더불어 숲
次柏執而痛 (차백집이통) 집착과 고통이 연이어 다가오면,
喪理遺不安 (상리유불안) 도는 사라지고 불안만 남네,
祈憧胸中起 (기동흉중기) 욕망이 가슴속에 일어나면,
料血慧可腕*(료혈혜가완) 피 흐르는 혜가의 팔을 떠올리네.
2026년 1월 3일 오전. 쇠귀(牛耳) 신영복 선생 10주기를 맞아 묘소를 참배하는 행사에 참여하다. 묘소에 오르며 그리고 내려오며 선생의 사상을 다시 한번 떠 올려 본다. 사실 『담론: 마지막 강의』(2015, 돌베개) 외에는 그냥 스치듯 읽는 바람에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담론에서 관계론과 존재론의 철학적 함의와 현대의 심리, 즉 연대의 해체에서 오는 경쟁 등 불안 심리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선생의 철학에 크게 감명받은 바 있다. 오늘 현장에서 김유철 선생의 시를 들으며 마음속에 얼개를 잡고 집에 돌아와 20자로 만들었지만 늘 충분하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다.
* 慧可腕(혜가의 팔): 혜가의 원래 이름은 신광神光이다. 달마가 소림사에서 면벽좌선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몇 번이나 가르침을 청했으나 문조차 열어 주지 않았다. 마침내 신광은 한겨울 폭설이 쏟아지는 밤에 다시 소림사 마당에서 죽을 각오로 서 있었다. 새벽이 되자 눈이 무릎까지 쌓였다.
마침내 달마가 묻기를
“너는 눈 속에 서서 무엇을 구하고자 하느냐?”
신광이 눈물을 흘리며
“오직 화상께서 자비를 드리워서 감로문을 열어 중생들을 구제하시기 바랍니다.”
달마
“부처의 도는 광겁曠劫동안 수행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인데, 어찌 가벼운 마음으로 구하려고 하느냐?"
신광은 이 말을 듣자 몰래 예리한 칼을 꺼내어 스스로 왼팔을 잘라 달마 앞에 놓았다.
달마는 문득
“제불諸佛이 도를 구할 때는 법을 위해 몸을 잊었다. 네가 지금 팔을 끊어 내 앞에 놓았으니 도를 구할 만하다.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혜가(慧可: 지혜를 구할 만한 사람)’이다.
신광이 묻기를
”부처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달마
“부처의 가르침은 남으로부터 얻을 수 없다.”
신광
“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부디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
달마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너를 위해 편안케 해 주겠다.”
신광
“마음을 찾아도 끝내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달마
“이미 네 마음은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