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식 Jul 17. 2016

Jeunes Grecs faisant.., 1846.

분별의 무용함

Jeunes Grecs faisant battre des coqs, 1846. Oil on canvas, 143cmⅹ204cm

역사 회화의 계승과 아카데미즘의 부활

Jean-Léon Gérôme(쟝 레옹 제롬)의

Jeunes Grecs faisant battre des coqs(닭싸움시키는 그리스 청년). 1846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예술적 프리즘은 아카데미즘을 거부하는 사실주의 회화로부터 매우 아카데미적인 역사화까지 광범위한 폭을 가진다. Gustave Courbet (쿠르베)가 사실주의의 대표자라는데 이의가 없듯이 Jean-Léon Gérôme(쟝 레옹 제롬, 1824~1904)은 아카데미즘의 대표자이자 역사화파의 계승자로 인정받은 이를 테면 쿠르베의 대척점에 위치한 화가였다.


제롬은 16세 되던 해 역사화가인 Paul Delaroche(폴 들라로슈)의 파리 작업실에 수습생으로 들어가는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화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1843년에 들라로슈의 작업실이 문을 닫게 되자, 제롬은 스승과 함께 이탈리아로 간다. 거기서 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정확함, 그리고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익히게 된다. 그리고 그 영향을 평생 이어가게 된다.


이 그림은 그가 스승과 함께 프랑스로 돌아온 뒤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가는 열망을 이루기 위해 여러 번 로마상(당시 화가들에게는 최고의 영예였으며 그 부상으로 이탈리아 유학이 보장되었다.)에 도전한 끝에 마침내 그 꿈을 이루게 한 그림이다.


제목에 표시된 것처럼 그림의 주인공은 젊은 그리스 남녀이다. 인물을 누드로 그린 것은 “아카데미즘”이 추구하는 원칙에 가깝다. 즉 “아카데미즘”이란 르네상스적 규범에 충실한 고전주의적 경향을 말하는데 이때의 인물 표현은 제작적 비례를 따라 그리는 것이다. 사람의 피부를 완벽하게 재현한 붓 터치와 옷의 질감을 표현하는 방법은 이전 로코코의 전통도 얼핏 느껴지는데 이것 역시 아카데미적인 경향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닭의 깃털 하나하나를 매우 정교하게 표현하여 “드로잉이 보이는 것은 회화라고 볼 수 없다”라는 Jean-Auguste-Dominique Ingres(앵그르)의 정신과도 부합한다.


제롬 회화의 주제는 역사적 시공간을 주요한 무대로 하고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 표현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로마시대 검투사의 이야기를 표현한 ‘검투사들(Pollice verso ; witha turned thumb, 즉 엄지 손가락을 아래로 하는 것. 죽음을 뜻함)’이나 ‘시저의 죽음(Mort de César)’등은 마치 그 당시 사건을 사진처럼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다. 제롬이 묘사한 역사적 시공간 속에는 당시 상황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근위병들의 결투(Suitesd'un bal masque)’는 당시 프랑스의 사회적 분위기와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장자 이야기

분별의 무용함


이주(離朱 맹자에서는 이루 離婁)는 멀리서 털끝을 분별할 수 있는 눈을 가졌다는 전설적 인물이다. 사광(師曠)은 진나라 평공 때의 유명한 음악가이다. 증삼(曾參)은 공자의 제자로서 어짊을 행하였고 사추(史鰌)는 위나라의 대부로 의로움을 행한 인물이다. 양자(楊子)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주장한 전국시대의 사상가이며 묵자(墨子) 역시 전국시대의 사상가로서 실리적 겸애설을 주장한 사람이다. 모두 장자 외편 첫 번째 駢拇(병무)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병무란 엄지발가락과 둘째 발가락이 붙었다는 말이다. 분별에 대한 인식을 장자는 언제나 이런 방식으로 접근한다. 이를테면 비 정상적인 상황을 제시하고 그것에 대한 비 정상적인 해석을 경계하라는 식이 바로 그것이다. 눈이 지나치게 밝은 ‘이주’도, 귀가 지나치게 밝은 사광도, 어질고 의로움에 집착하는 증삼과 사추도, 또 변설을 중시하여 남을 비판하거나 칭찬하는데 쓸데없는 말을 하는 양자나 묵자도 도(道)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병무에서 장자는 마침내 이전의 내편 7 편의 이야기의 비유적 묘사와 간접적 방법에서 약간은 벗어나 직설적이며 때로 용감하게 현실을 비판하고 어떤 경우에는 매우 현실적인 대안까지 내놓는 혁명가적 모습을 보여준다. 즉, 장자에 의하면 세상살이에 있어 어짊과 의로움은 마치 육손이나 발가락이 붙은(병무) 존재처럼 불필요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장자는 또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인위적인 행위에 대한 경계한다. 즉, 도둑질만큼 (이 험한 세상- 장자 당시의 세상) 어짊과 의로움을 행하겠다는 이야기는 위험하다. 심지어 장자는 절의를 위해 굶어 죽은 백이(伯夷)와 평생 도둑질을 하다 죽은 도척(盜跖)을 인간의 본성을 저버린 사람으로 보았고, 그런 행동은 모두 도(道)와 거리가 멀다고 이야기한다. 즉, 장자는 사람의 본성을 해친다는 것은 참됨(道)과 거리가 멀다고 본 것이다.

장자가 ‘병무’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을 넘는 일 자체가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병무 편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이야기는 지금의 현실과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 이야기다.


夫不自見而見彼(부불자견이견피) : 자기 스스로 보지 못하고 남의 본 것만을 본다거나,

不自得而得彼者(불자득이득피자) : 자기 스스로 얻지 못하고 남의 것만을 얻는다는 것은,

是得人之得而不自得其得者也(시득인지득이불자득기득자야) : 이것은 남이 얻은 것만을 얻으려 하고, 자신이 지녀야 할 것을 스스로 지니지 않는 것이 된다.


장자 병무

작가의 이전글 L'Atelier du peintre 1854-5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