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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ul 03. 2017

이중적 이미지의 자화상

Doppelblidnis Marées und Lenbach 1863

Doppelbildnis Marées und Lenbach, Oil on Canvas. 54.3 × 62 cm. Neue Pinakothek


두 개의 얼굴이 겹쳐져있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어렵지만, 뒤 편 얼굴이 더 밝게 빛나고 있고 앞 쪽 얼굴은 어둡게 처리되어 있다. 뒤편 얼굴은, 얼굴의 삼분의 일이 가려져 있지만 보이는 얼굴만으로도 충분히 전체적인 그의 표정을 짐작할 수 있다. 희미하게 웃는 것 같은, 그러나 약간은 묘한 여운을 남기는 얼굴의 주인공은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다. 


‘Hans von Marées(한스 폰 마레, 1837~1887)’는 1837년 지금의 독일 서북부 ‘Wuppertal(부퍼탈)’의 일부이지만 1929년까지는 독립적인 도시로 있었던 ‘Elberfeld(엘버펠드)’출신이다. 부유한 은행가 집에서 태어난 그는 10세 때 ‘Koblenz(코브렌츠)’로 이주하여 거기서 김나지움(초등학교)을 졸업하고 1855년까지 베를린 아카데미에서 미술 교육을 받는다. 베를린에서 ‘마레’는 당시 유명한 판화가였던 ‘Carl Steffeck(칼스테펙, 1818~1890)’에게 사사하고 1855년 아카데미 졸업과 함께 군에 입대한다. 제대하고 뮌헨으로 간 ‘마레’는 이 그림의 또 다른 주인공인 ‘Franz von Lenbach(프란츠 폰 렌바흐, 1836 ~ 1904)’를 만나게 된다.


사실주의 화가였던 ‘렌바흐’와 초상화를 주로 그렸던 ‘마레’는 ‘Adolf Friedrich von Schack(아돌프 프리드리히 폰 샤크, 1815 ~ 1894)’백작의 주선으로 이탈리아로 보내진다. 이 시기에 그는, 그의 삶 전체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여러 예술적인 인사와 교류하였다. 두 개의 얼굴이 중첩된 이 그림은 이태리로 떠나기 한 해 전에 그린 것으로서 20대 중반을 넘어선 빛 나는 두 청년의 모습, 특히 뒤 쪽에서 스스로 빛을 받아 묘한 웃음을 띄는 ‘마레’의 표정은 어쩌면 다가올 미래의 삶에 대한 자신감이었을지도 모른다. 


‘마레’는 1869년 프랑스를 잠시 방문하여 당시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인상주의 화풍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 뒤 베를린과 드레스덴에서 활동을 하다가 1873년 다시 이태리로 돌아가 여러 가지 예술적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피렌체’에 간 ‘마레’는 ‘German Romans(로마의 독일인)’이라고 불리던 이상주의자 그룹의 리더인 ‘Anselm Feuerbach(안셀름 포이에르 바흐, 1829~1880)’와 ‘Arnold Böcklin(아널드 뵈클린, 스위스 출신. 1827~1901)’을 만나게 되는데 이 시기부터 그는 초상화으로부터 신화적 모티브를 중심으로 하는 그림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게 된다.


그림의 앞 쪽 주인공 ‘렌바흐’는 사실주의 화가로서 이 그림에서 ‘마레’와 함께 한 이후 ‘마레’와는 완전히 다른 길로 나아가게 된다. ‘렌바흐’는 이탈리아와 독일을 오가며 매우 정열적인 작품 활동을 하였고 특히 이집트 여행을 통해 그의 예술적 삶 전체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다. 만년에는 상업적이고 실험적인 회화 작업을 시도하면서 독일 내에서 큰 명성을 얻는다.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은 자신의 내부적 모습을 구체화하는 방식의 하나로써, 이를테면 문학적으로는 자서전과 동일하게 이해될 수 있다. 화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미적 감각을 최대한 활용하여 스스로의 이미지를 창조하여 그것을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은 회화의 역사 이래로 줄곧 있어온 일이다. 초상화가로서 기념비적 작품은 1500년에 그려진 ‘Albrecht Dürer(알브레히트 뒤러, 1471~1528)’의 자화상이다. 그 뒤 ‘Rembrandt(렘브란트, 1606~1669)’로 이어진 초상화의 맥은 서양 예술의 중요한 장르로 자리를 잡게 된다.


초상화에 자신의 얼굴과 다른 사람의 얼굴을 동시에 그리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이다. ‘마레’의 이러한 작업은 이 그림 외에도 하나가 더 있는데, 조각가였던 Adolf von Hildebrand(아돌프 폰 힐데브란트, 1847~1921)와 그린 자화상도 있다. 이 그림에서 ‘마레’는 자신의 이미지와 타인의 이미지를 겹치게 배치하였다. 이는 자신의 이미지와 친구인 '렌바흐'가 가진 이미지의 교점이 존재하는 상황, 즉 어떤 부분에서 이 사람과 나의 생각은 완전히 동일할 수 있다는 생각의 표현으로 짐작된다. 더 나아가 '렌바흐'와 '마레' 자신의 이미지를 겹침으로써 두 사람의 이미지 외에 또 다른 다중적 이미지를 창조하고, 거기서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려는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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