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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ul 08. 2017

정물

Stilleben mit Kanne, 1635

Stilleben mit Kanne, 1635. Oak, 56cm X 86.5cm Alte pinakothek.

주전자가 있는 정물


주석으로 만든 주전자(영어로는 jug, 독일어로는 Kanne)에 비치는 빛의 부드러운 반사, 뒤 편으로 이어지는 짙은 그림자, 그리고 주전자 주위를 둘러싼 공기의 느낌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 시기 작가들의 공통적 해석에 의한 회화적 표현이다. 


'Pieter Claesz (페테르 클라제, 1597 ~ 1660)'는 Belgium(벨기에)의 Berchem(베르켐, Antwerp-앤트워프에서 멀지 않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1620년 네덜란드 Haarlem(하를럼)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일생 동안 작품 활동을 했다. 이 시기에 네덜란드에서는靜物畵(Stillleben)가 유행했는데 그중에서도 테이블 위에 차려진 음식을 그린 그림들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러한 정물화들은 ‘Ontbijtjes(온트베찌스)’라고 읽는데 네덜란드어로 ‘아침 식사’라는 말이다. 페테르 클라제는 'Willem Claesz Heda (빌럼 클라제 헤다, 1593~1682)'와 함께 네덜란드 회화의 새로운 양식으로 부상한 ‘아침 식사 그림’을 발전시켰다.


‘클라제’와‘헤다’는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작가들이다. 네덜란드 황금시대란 17세기 네덜란드의 문화적 번영을 말한다. 스페인으로부터 분리 독립하기 위해 벌인 '80년 전쟁'의 영향은 네덜란드 해군력의 증강과 민족의식의 고취였다. 그 뒤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완전한 독립국의 지위를 쟁취한 네덜란드는 전쟁 중에 획득한 기술을 이용하여 해상무역을 장악하게 된다. 해상무역을 통해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이 여유는 곧 문화 예술로 전이되었는데 다양한 화가들이 각각의 길드를 조직하고, 여기에서 창작된 다양한 미술품들이 활발히 거래되었던 시기가 바로 네덜란드 황금시대이다.


이 시기의 유명한 화가로는 유명한 화가로서는 ‘Lucas van Leyden(루카스 반 레이덴, 1494~1533)’과 ‘Pieter Aertsen(피테르 아르첸, 1508~1575)’을 시작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그림인 ‘Der fröhliche Trinker(행복한 술꾼, 1628)’을 그린 ‘Frans Hals(프란스 할스, 1582~1666)’, ‘Das Mädchenmit dem Perlenohrgehänge(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1665)’를 그린 ‘Johannes Vermeer(요하네스 베르메르, 1632~1675)’, 또 마침내 그 정점에 있었던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렘브란트 판 레인, 1606~1669)’이 있다.


‘온트베찌스’에서 출발한 이 시기의 화가들은 점차 삶과 죽음, 시간과 공간에 이르는 철학적 문제로 확장되었고, 그 결과 그들은 탁자 위의 음식뿐만 아니라 해골이나 촛불(특히 불꽃이 꺼진 뒤 피어오르는 연기를 포착), 그리고 시계, 나침반 등 음식과는 무관하지만 이러한 물건들을 이용하여 삶의 여러 문제들을 나타내고자 했다.


식탁은 매우 풍성하다. ‘Haxe(학세: 돼지고기 뒷다리에 맥주를 발라 구운 독일 식 요리)’도 있고 빵도 있다. 호두와 비슷해 보이는 견과류도 있다. 쨈을 담을 만한 작은 용기는 숟가락이 걸쳐져 뚜껑이 반쯤 열려 있고 그 옆의 작은 유리잔은 앞쪽의 큰 주석 잔과는 다른 방향으로 넘어져 있다. 국자는 넘어진 잔에 가려 자루만 보이고 유리잔에는 음료인지 술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반쯤 담겨 있다. 식탁보의 한 쪽 귀퉁이가 말려 올라 온 탓에 빵을 담은 접시가 약간은 불안하게 보인다.


이것은 모두 상징으로 볼 수 있다. 불그레한 고기 빛이 선명한 학세는 ‘현재의 시간’ 일 것이다. 클라제가 즐겨 사용하는 색은 무채색 종류, 즉 회색과 짙은 갈색, 그리고 흰색인데 이 그림에서 유채색에 가까운 것은 고기와 빵뿐이다. 색채를 가진 두 개의 사물은 살아있는 ‘현재의 삶’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더불어 빵 밑에 불안하게 위치한 쟁반은 황금시대가 있기까지 네덜란드 사람들이 겪어내야만 했던 불안정하고 불안한 현재의 삶이 상징적으로 표현되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넘어진 두 개의 컵은 ‘과거의 삶’이다. 시간의 경과를 그림을 보는 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작가의 장치는 바로 ‘넘어짐’이다. 즉, 두 개의 컵은 오래전 다른 시점으로부터 출발하여 또 우리를 관통하는 ‘시간의 표상’인 셈이다. 그리고 유리컵 속의 액체와 말려 올라간 식탁보는 ‘미래의 암시’다. 언젠가는 비워질 음료와 누군가에 의해 바르게 손질될 식탁보는‘미래에 대한 작가의 의지’이거나 또는 ‘기대’ 일 수 있다.


이 그림의 또 다른 특징은 혼란스러운 사물의 배치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매우 균형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려올라 간 식탁보의 어지러움을 ‘jug(주전자)’가 보완하고 있고 ‘학세’의 다리가 위로 치켜 올라간 것을 국자의 손잡이 장식이 식탁보 밑으로 내려 옴으로서 화면은 상하 조화를 이룬다. 두 개의 컵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넘어 짐으로서 역시 균형을 이룬다. 이러한 세심한 배려가 전체 그림을 조화롭게 하고 있다. 한편 이와같은 그림의 구도는 이 그림 이후에도 한 동안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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