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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ul 27. 2017

여름 풍경

Caspar David Friedrich의 풍경화

 Der Sommer (Landschaft mit Liebenden) , oil on canvas, 71.4 × 103.6 cm, 1808. Neue Pinakothe

'Caspar David Friedrich(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1774~1840)'는 북 독일의 발트해 연안 'Pomeranian town of Greifswald(그라이프스발트, 당시는 스웨덴 령)'에서 1774년 태어났다. 어린 시절 지리적으로 가까운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그림을 배운 뒤 20대 중반 독일 동부 드레스덴에 정착하여 42세 되던 해 그곳의 미술학교 교수가 되었다. 


'카스파르'의 어린 시절은 매우 불행하였다. 아버지는 엄격한 루터파 신교도였고 어린 그에게 닥친 비극적인 몇 개의 사건들(어머니는 그가 일곱 살일 때 천연두에 걸려 죽었고, 그의 누이는 발진티푸스에 걸려 죽었다. 그리고 13세 되던 해 '카스파르'가 발트해의 얼음물에 빠졌을 때, 그의 형은 그를 구하려다가 익사하고 말았다.)은 그의 그림 전반에 우울함과 공허함, 그리고 짙은 종교적 이미지를 드리우게 했다.


여름날, 하늘과 땅이 맞닿은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드넓은 평야와 한적한 시골 풍경은 그가 일생을 보낸 중부 독일 '드레스덴'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나무들은 푸르고 강물은 조용히 흐르며 낮은 언덕 위에는 키 큰 미루나무와 자작나무가 서 있고 좀 떨어진 곳에 낮은 나무 몇 그루가 모여 있다. 키 큰 나무 밑으로 붉은 장미와 노란 해바라기(루드베키아 보다는 확실히 크다), 탐스런 빨간 열매를 달고 있는 산딸기와 하얗게 빛나는 백합이 어우러져있다. 나무 사이에 흰 비둘기 두 마리가 사이좋게 앉아 있는 그 밑으로 한 쌍의 남녀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다. 두 남녀는 마치 금지된 사랑인양 짙은 나무 그늘에 몸을 가리고 키스하는 듯 얼굴이 겹쳐져 있다. 


이러한 풍경의 요소들은 카스파르의 그림에서 주로 발견되는 것으로서 밝고 환하지만 약간은 공허한 느낌이 드는 풍경과 전체 풍경 속에 한 부분으로서 개성이 배제된 인물들, 주로 뒤돌아서 있거나 표정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얼굴 등이 프리드리히 그림의 인물들이다. 이 그림에서도 두 남녀의 사랑이 묘사되어 있지만, 사실 남녀의 사랑은 이 그림에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중점은 아니다. 그림 제목에 한 쌍의 연인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오히려 남녀의 묘사는 여름날의 풍경 속에 있을 법한 남녀 한 쌍, 마치 그림 속의 비둘기와 같이 특별한 이야기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림 속의 나열된 여러 사물로서 배치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Das Eismeer(빙해), oil on canvas, 126.9 × 96.7cm, from 1823 until 1824, Kunsthalle Hamburg


카스파르는 한 동안 독일 화단에서 거의 알려지지 못했던 화가였다. 그 이유는 그가 태어났던 지역인 그라이프스발트은 1815년까지 스웨덴령이었다가 그 해 프로이센으로 편입되었고, 187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독일 영토가 되는 지역이었다. 지리적으로도 폴란드와 국경지역으로서 독일의 문화적 중심지였던 베를린이나 남부의 뮌헨에서 볼 때에는 너무나 먼 문화적 변방이었다. 


20세기 되어서야 비로소 그의 그림이 독일 전체에 알려졌고 이로 인해 그에 대한 평가도 새롭게 인식되어졌다. 그의 그림은 낭만주의(독일) 회화를 대표하는 것으로서 계절의 변화에 대한 내면의 풍경, 이를테면 가을 ·겨울 ·새벽 ·안개 ·월광 등의 정경을 독특한 그의 방식으로 표현하였는데 그 중심을 관통하는 느낌은 정적(靜寂)과 우울(憂鬱), 그리고 공허(空虛) 감이다. 대표작<빙해>는이러한 것이 집약되어 표현되어 있다.


카스파르는 당시 유럽 전역에 퍼졌던 유물론적 사고의 환멸에서 유래한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 즉 인간이 창조한 문명의 반대쪽에 존재하는 ‘신의 창조물로써의 자연’을 표현하고자 했는데 이러한 그의 태도는 그와 동시대에 존재했던 두 명의 위대한 영국 출신의 풍경화가 J. M. W. Turner(터너, 1775–1851)와 John Constable(콘스터블, 1776–1837)과 그 맥이 닿아 있다. 


19세기 프랑스의 조각가 Davidd'Angers(다비드 당제, 1788–1856)는 1834년 드레스덴을 방문하여 카스파르의 그림을 “the tragedy of landscape(비극적 풍경화)”[1]라고 평가하였다. 카스파르 풍경화 전체에 드리워진 어둠과 불안, 그리고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강렬한 느낌을 ‘당제’는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불분명한 그의 죽음처럼 그의 그림은 우리에게 매우 모호하고 동시에 강렬하다. 


      

[1] 1834년 '당제'의 Dresden 방문; Vaughan 2004, p. 295에서 인용. Vaughan, William (2004), Caspar David Friedrich, Oxford Oxfordshire: Phaidon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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