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 Quichotte und Sancho Pansa, oil on canvas, 51 × 32 cm. 1868, Neue Pinakothek
붉은색으로 칠해진 얼굴에는 눈, 코, 입의 윤곽조차 없다. 희고 굵은 선으로 묘사된 사물들에서 묘한 강렬함이 느껴진다. 말라비틀어진 Rocinante(로시난테; 돈 키호테의 말)를 굵은 선으로 묘사하니 어쩐지 기괴한 느낌조차 든다. 그 위에 타고 있는 주인공은 윤곽으로 볼 때, 방패와 창을 들고 어깨가 강조된 갑옷을 입었는데 썩 전투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한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말의 앞다리 때문에 약간 불안한 기운마저 느껴지는데 그가 바로 돈키호테다.
소설 돈키호테의 무대인 스페인 중․남부 고원지대, 라만차 지역 특유의 맑고 건조한 기후를 보여 주듯 하늘은 검푸르다. 거친 붓 터치로 검푸른 하늘이 더욱 강렬하고 그 위에 배치된 붉은색 돈키호테 얼굴과의 대비가 선명하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능선 위에 약간 붉은색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돈 키호테를 따르는 종자 Sancho Panza(산초)이다. 돈 키호테를 따르는 그처럼 우리도 어쩌면 세상을 생각 없이 따라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Honoré Daumier(오노레 도미에, 1808~1879)로서 캐리커쳐와 석판화 분야의 대가인데 이후 프랑스 및 근대 예술에 끼친 영향은 매우 지대하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Charles Baudelaire(샤를 보들레르)가 “근대 미술의 모든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한 사람”이라고 격찬할 만큼 그가 근대 미술사에 남긴 영향은 크다. Eugène Delacroix(들라크루와, 1798~1863)로부터 시작되는 인물과 사물의 세밀한 묘사의 생략이 도미에에 이르러서는 좀 더 과감해진다. 윤곽의 묘사에 있어 거의 미완성처럼 느껴지는 굵고 강렬한 터치는 훗날 야수파인 Georges Henri Rouault(조르주 루오, 1871~1958)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도미에는 1808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태어났다. 가난함 때문에 이렇다 할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1830년 시사주간지 『La Caricature 라 카리카튀르(영어 캐리커처) 』의 시사 만화가로 데뷔하여 풍자 만화가로 이름을 알린다. 하지만 국왕을 모독한 죄로 실형을 받았고 잡지도 곧 폐간되어버렸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들은 속이 좁은 모양이다.
영웅의 환상 속을 헤매는 주인공 돈키호테를 묘사한 Miguel de Cervantes(세르반테스, 1547~1616)의 El Ingenioso Hidalgo Don Quijote de la Mancha(영문 The Ingenious Nobleman Mister Quixote of La Mancha; 이상한 귀족 라만차의 돈 키호테, 1605 1부, 1615년 2부 각각 출간)는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중세 기사도에 대한 패러디쯤에 해당한다. 1615년에 완전한 책이 출판되었으니 거의 사라져 가고 있는 중세의 그림자에 대한 통렬한 비판인 셈이다. 이 그림의 강력한 주제는, 소설 돈키호테의 그러한 비판적 모티브와 주인공 돈키호테의 모습까지 빌려서, 이제는 19세기 말 프랑스 혁명기 근대의 새로운 흐름을 거스르는 귀족 세력(특히 7월 왕정의 루이 필립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들의 몽매함을 풍자하고자 했던 도미에의 일갈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지친 일상을 거친 붓질로 대담하게 그려낸 도미에의 회화는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진한 휴머니즘이 배어 있다. 그의 그림 “Le Wagon de troisième classe(삼등 열차, 1864)”에서는 중심으로부터 유리된 민중의 고단한 삶과, 그곳에서 발견되는 ‘소외’와 ‘무관심’을 어렵지 않게 읽어 낼 수 있다.
우리의 주인공 돈키호테는 비록 구 시대의 망상에 사로잡혀 어이없는 일을 감행하지만 한 편으로 그에게 묘한 인간적 매력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돈키호테의 영웅에 대한 병적인 망상이 프랑스 혁명기, 그리고 지금의 권력층처럼 오로지 그 망상의 종착역이 ‘자본’과 ‘권력’에 있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일 것이다. 이를테면 최소한 돈키호테는 자본이나 권력으로부터는 비교적 자유로웠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바란 '명예(기사도)'조차도 검불처럼 가벼운 것임에 틀림없지만 말이다. 낭만주의 화풍이 인상주의로 진행되는 과정에 있었던 도미에는 이처럼 묘하게 얽힌 '명예'와 그 허상의 느낌을 강렬한 붓놀림으로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