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식 Nov 05. 2017

재유 2017 머리말

자작 한시집

2014년부터 그 해 쓴 한시를 묶어 책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참 쓸데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런 일로 해서 내 삶이 조금 단단해지고 행복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올해도 역시 이 일을  감행하면서 그 머리말을 써본다. 책은 12월 초에 나올 예정이다.


스스로 쓴 머리말


올해도 벌써 11월이다. 먹은 것은 나이요, 놓친 것은 세월이다. 안타깝다. 하지만 불가항력이다. 그러나 저항하기로 한다.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만 시간을 늘려서 느껴보려고 애를 썼다. 좀 더 미세하게, 좀 더 촘촘히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늘 거대한 우주의 질서 속에서 스스로가 그저 한 줌 티끌과 같다는 자괴감만 느꼈다. 그 이유는 당연히 절대의 시간과 공간은, 매우 엄격하고 야멸차게 나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1년이 거의 지나가고 있다. 후회 투성이다. 새해가 시작되는 즈음에 아무리 다짐을 해 보아도 이렇게 한 해의 끄트머리쯤에 당도해보면, 후회의 역사는 세월이 갈수록 거창하고 다양해진다. 참 큰일이다. 살 날이 분명 살아온 날보다 작아지고 있는데, 오히려 후회는 기하급수적으로 는다.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돌아갈 곳도 없다. 그 기막힌 감정의 끝에 그저 서 있을 뿐이다.


2005년쯤부터 장난 삼아 실실 놀면서 한시를 쓰기 시작했다. 구성이나 운의 사용이 엉터리 투성이고 말도 되지 않는 것들을 12년째 썼으니 꽤나 미친놈이 아닐 수 없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는 대충 30수쯤 썼다. 그러나 시작을 해 보니 욕심이 생겼다. 2010년부터는 매해 3~40 수을 쓰더니 2014년부터는 70수를 넘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한시를 전공한 사람이 보면 엉터리투성이에 대해 비난을 할 것이고, 정말 시인이 보면 우습고 유치하며 저급한 감상에 어쩌면 욕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어떤가? 내가 이걸로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는 것도 아니니 아무렴 어떤가? 그냥 내 기분에 취해서, 내가 좋아서,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절대의 시간을 조금만 늘려 보려는 몸부림으로 '한시'라는 방편을 사용하는 것인데 말이다.


2017년 올해 제목은 장자 외편의 ‘재유’를 따왔다. ‘있는 그대로 두라’는 말인데 내 책의 제목으로 하려니 언뜻 ‘장자’의 뜻에 맞는 같기도 하고, 또 그 반대로 ‘장자’의 뜻과 배치되어 만약 ‘장자’가 살아 돌아온다면 꽤나 잔소리를 해 댈 것 같기도 하다.


‘장자’는 재유 첫머리에 이렇게 일갈한다. “천하를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말은 들어 보아도, 천하를 다스려야 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장자』外篇 네 번째(전체로는 11번째) 이야기在宥(재유) 첫 부분에 등장하는 말이다. 도대체 장자는 무엇을 “그대로 두라!”라고 이야기하고 있는가? 『장자』를 읽다 보면 ‘장자’는 끊임없이 우리의 자유롭지 못한 생각을 지적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또, 끊임없이 人爲를 가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이야기한다. 인위를 가하지 않는 것은 이를 테면, 그대로 두는 것이므로 ‘장자’의 생각은 모든 사물이 스스로 온전함을 유지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어떤 명분으로도 인위를 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2017년 학교를 옮겼다. 진주시내에 있고 인문계 남자고등학교이며 오로지 대학 진학이 목표인 학교라고 생각하니 처음 인상은 살풍경,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 속에서 약 9개월을 보낸 지금, 다시 학교를 보니 이 학교도 보통의 학교이고, 동시에 여기도 꽃은 피고 지며, 동시에 아름다움은 도처에 있다. 앞서 ‘장자’가 주장한 재유의 취지를 필터로 나의 이 일(이런 쓸데없는 책을 묶는다는 것)을 본다면 분명 인위다. 사물을 그대로 두지 않고 나의 인위를 엄청나게 가해 사물을 분석하고 따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결코 사물에 그 어떤 인위도 가하지 못하였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인데 9달 동안 내 주위의 자연은 나의 이런저런 분석이나 감정이입에도 불구하고 수 억년 동안 그랬듯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순환했고, 또 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의 시를 묶어 누군가에게 주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부끄러운 일이라 내가 알고 있는 나의 지인 들 중, 이 책을 받고 그 어떤 욕을 나에게 해도, 내가 웃으며 받아넘길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이 책을 줄 것이다. 나의 이 졸렬하고 어리석은 ‘한시’를 받고 그저 기뻐할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나의 『재유 2017』 은 완전히 헛일이 아닐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낙석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