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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Aug 23. 2016

La mort d'Orphée,1866.

시비의 판단을 내릴 기준은 없다.

La mortd'Orphée, 1866. Oil on canvas, 189cmⅹ118cm

Émile Lévy(에밀 레비)가 그린 Lamort d'Orphée(오르페우스의 죽음) 1866


Orphée(오르페우스)는 숲의 요정 Eurydice(에우리디케)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에우리디케는 양치기 Aristaeus(아리스타 이오스)의 끈질긴 구애를 피해 도망가다 그만 독사에게 복사뼈를 물려 죽게 된다. 신부를 잃은 슬픔에 괴로워하던 오르페우스는 마침내 저승 세계로 내려가에우리디케를 데려오기로 결심한다. 

오르페우스는 현악기의 일종인 리라를 다루는 솜씨가 탁월했는데, 그가 리라를 타며 노래를 부르면, 인간은 물론 모든 동물들과 나무, 돌덩이까지 감미로운 그 소리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는 스틱스 강의 뱃사공 카론과 저승 문 입구를 지키는 머리 셋 달린 괴물 케르베로스를 이 환상의 리라 연주와 노랫소리로 사로잡아 무사히 저승의 왕 하데스와 왕비 페르세포네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는 오르페우스가 들려주는 천상의 소리에 감동해 에우리디케를 데려갈 수 있도록 허락했다. 다만 이승에 도달하기 전까지 오르페우스가 절대 에우리디케를 뒤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었다. 오르페우스는 부지런히 지상을 향해 올라갔다. 이윽고 어두운 저승 세계를 거의 다 벗어났음을 알리는 이승의 빛이 희미하게 비쳤다. 그러자 방심한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돌아보고야 말았다. 그 순간 사랑하는 아내는 다시 칠흑 같은 저승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이 일 이후 오르페우스는 절망 속에 나날을 보냈는데 이때부터 그의 여성 혐오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에우리디케를 잊지 못하는 마음에 여성을 멀리하고 오직 소년들과 관계함으로써 동성애자가 되었다. Publius Naso Ovidius(오비디우스)의 “Metamorphoses(변신 이야기)”에 따르면 오르페우스가 트라키아에 동성애를 퍼뜨린 죄로 디오니소스 축제 때 여신도들에게 돌과 몽둥이에 맞아 사지가 찢겨 죽임을 당했다. 이 그림은 바로 그 이야기 중, 오르페우스가 트라키아 여인들에게 맞아 절명하는 순간을 모티브로 삼아 그린 그림이다.


이미 머리에 치명상을 입고 피가 흥건한 상태로 절명한 오르페우스의 손을 잡고 몽둥이를 높이 치켜든 살기 등등한 여인의 모습이 화면의 중심에 있다. 그 뒤쪽으로는 악기를 부는 여인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축제(디오니소스 축제) 중임을 알 수 있다. 오르페우스가 죽었는지 확인하는 두 명의 여자 얼굴에는 알 수 없는 당혹감과 기괴한 미소가 스친다. 이 그림은 광적인 축제의 장에서 동성애자 오르페우스를 처단하는 트라키아 여인의 살기 등등한 모습과 악기를 부는 육감적인 여인들, 그리고 푸른색 옷을 입은 축제의 사제를 종적으로 배치하여 관람자로 하여금 시간차를 느끼게 하여 오르페우스의 죽음에 대하여 극적인 느낌을 배가 시키도록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을 그린 Émile Lévy(에밀 레비, 1826~1890)는 풍속화가 이자 초상화가이다. 로마 상을 수상하여 이탈리아에서 매우 정교한 드로잉을 익힌 뒤 귀국하여 신화에 근거한 풍속화와 개인적 초상화에 주력하였으며 주로 살롱 전시를 통해 그의 작품을 알렸다. 그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867년에 레지옹 도뇌르(Légion d'honneur)를 수상하게 된다. 




장자 이야기


시비의 판단을 내릴 기준은 없다.


삶을 좋아하는 자체가 어쩌면 미혹일지도 모른다.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죽음이 어디로 가는지 또는 어떻게 죽음에 이르는 길인지 몰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애(艾) 땅의 국경 관리인의 딸인 여희라는 여자는 처음, 타국인 진나라에서 그녀를 데려갈 때 그녀는 옷깃을 적시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진나라의 왕인 완의 극진한 대접을 받자자 처음에 울었던 그 사실을 후회했다고 한다. 그러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죽은 사람도 죽기 전에는 삶에 애착했던 사실을 죽은 이후 어쩌면 후회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삶과 죽음에 대한 기존의 가치관 조차도 매우 잘못된 고정관념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꿈속에서 즐겁게 술을 마시던 사람이 아침에 깨어나 슬피 울기도 하고, 꿈속에서 슬피 울던 사람이 아침에 깨어나 즐겁게 사냥하기도 한다. 한참 꿈을 꾸고 있을 때에는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모르며, 꿈속에서 꿈을 해몽하기까지 한다. 깬 다음에야 그것이 꿈이었음을 안다. 그런즉 대각(大覺)이 있어야만 삶 자체가 곧 대몽(大夢)이었음을 아는 것이다.

꿈과 현실의 문제 역시 동일한 이치로 해석될 수 있다. 


장자 제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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