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식 Jan 31. 2018

『장자』외 편(제12편) 천지 (3)

인위(유위)의 무용함

*굵은 글씨가 원문이고 나머지는 해설이다.


일상을 유지하고 있는 보통 우리의 인식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경지를 만나면, 우리는 당황하거나 혹은 두려워한다. 가끔은 피하거나 조금 지나치면 그러한 것들을 무시하거나 심지어 비난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경우는 스스로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하거나 혹은 그러한 경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보지도 않고 지레 겁을 먹은 결과인데, 살면서 자주 경험하는 보통의 우리 모습이다. 다음 글에서 요임금은 그 보통의 우리 모습을 대표하고 있지만 엄격하게 따져보자면 보통의 우리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뛰어난 지식과 인품, 그리고 지위를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의 ‘장자’는 이러한 堯를 보통의 존재로 보고 있다.


『장자』 12편(외 편 다섯 번째) 天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즉 보통이 넘는 보통의 사람 堯가 가지는 한계에 대하여 ‘장자’는 이렇게 비유하고 있다.


堯(요)의 스승은 許由(허유)라 하고 許由의 스승은 齧缺(설결)이라 하고 齧缺의 스승은 王倪(왕예)라 하고 王倪의 스승은 被衣(피의)라 한다.


각 이름은 구체적 인물이라기보다는 상징적 이미지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먼저 설결이라는 이름을 한자의 의미로만 본다면 이곳저곳이 패어 이지러진 모습(齧 – ‘물다’. 또는 ‘흠’을나타내고 缺 – ‘이지러지다’의 뜻)이니 마치 질그릇의 입구가 이곳저곳이 파여 이지러진 모습을 나타낸다. 설결이 매우 지혜로웠으니 그 지혜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을 것이다. ‘장자’가 가장 경계하는 人爲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므로 그것이 오히려 설결의 자연적인 성품을 해쳤을 것으로 판단하여 마치 이가 빠진 도자기 같이 불완전한 이미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王倪는 ‘어리다’는 뜻의 倪와 王이 붙어있으니 철부지처럼 ‘순수하다’는 의미와 혹은 가장 순수하여 본질을 잘 알고 있는 존재로 해석될 수 있는데 내편의 齊物論에 등장하는 왕예는 이러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설결이 왕예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왕예는 답변을 한다.


“선생께서는 모든 존재가 다 옳다고 인정되는 것에 대해서 아십니까?”

왕예가 대답했다.

“내가 어떻게 그것을 알겠는가?”

“선생께서는 선생이 알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아십니까?”

왕예가 대답했다.

“내가 어떻게 그것을 알겠는가?”

“그렇다면 모든 존재에 대해 앎이 없습니까?”

왕예가 대답했다.

“내가 어떻게 그것을 알겠는가? 비록 그렇지만 시험 삼아 말해보겠다. 내가 이른바 안다고 하는 것이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님을 어찌 알겠으며, 내가 이른바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님을 어찌 알겠는가?”


뭔가 말장난 같지만 근본은 無知의 知에 대한 표현이며 동시에 거대한 無爲의 세계에 대한 언어적 표현일 뿐이다. 문자 자체로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상황이니 다만 우리는 그런 방법적 모색을 할 뿐이다.


마지막의 被衣는 또 누구인가? 피의는 말 그대로 ‘겉옷’이라는 말인데 이것은 중의적 의미이다. 겉에 걸치는 옷이라 내부의 사실과는 무관한 것으로 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내부적 작용에 의하여 겉이 결정되고 이렇게 드러난 것으로 타인에게 읽히거나 판단되기 때문에 내부와 매우 밀접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를테면 피의는 그러한 중의적 함의의 중간에 위치한 개념으로서 상식을 뒤집거나 혹은 타파하는 ‘장자’적 표현의 적절한 예로 볼 수 있다.


내편 응제왕에는 포의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포의자는 바로 여기 등장하는 피의를 말한다. (중국 위진시대 학자 崔譔(최선 – 장자를 27편으로 엮음)은 그가 엮은 『장자』에서 “蒲衣子는 바로 被衣이니 王倪의 스승이다.”라고 쓰고 있다.


齧缺이 王倪에게 물었는데, 네 번 물어도 네 번 다 모른다고 하였다. 설결이 그로 말미암아 뛸 듯이 크게 기뻐하여, 가서 蒲衣子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蒲衣子가 말하였다.


“그대는 이제 비로소 그것을 알았는가. 有虞氏(유우 씨 – 순임금 ; 요임금의 뒤를 잇는 사람)도 泰氏(태씨 – 태곳적 임금 복희 씨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음)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유우 씨는 그래도 오히려 자기 마음속에 仁을 품어서 사람들을 불러 모아 백성들을 얻었지만, 처음부터 사람을 구분하려는 입장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태씨는 누워 잠잘 적에는 느긋했고, 깨어 있을 때에는 어수룩해서, 어느 때에는 자신을 말이라고 여기고 때로는 자기를 소라고 여겼다. 그의 지혜는 참으로 믿을 만하였으며, 그의 德은 매우 진실하였으니 처음부터 사람들을 구분하려 하지 않았다.”


아무리 뛰어난 순임금이라 할 지라도 인위의 그림자가 있으니 이는 태곳적 제왕의 도와 견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피의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피의는 요, 허유, 설결 그리고 왕예보다 뛰어난 경지의 존재인 것이다.


다시 천지로 돌아와이야기를 이어가면,


堯가 許由에게 물었다. “齧缺은 하늘과 짝할 만한지요? 나는 王倪를 통해 그에게 천자의 자리를 부탁하려 합니다.”


한 때, 이미 堯는 許由에게 왕위를 받아 줄 것을 부탁한 바 있다. 그러자 허유는 기산으로 숨었고 다시 사람을 보내 왕위를 물려주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번에는 귀를 씻은 인물이 바로 허유다. 덧붙이자면 허유 옆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소부(巢父 – 채소밭 주인, 즉 지극히 평범한 사람)는 자신의 소에게 허유의 귀 씻은 물을 먹일 수 없다고 하며 허유가 귀를 씻은 물보다 더 상류로 올라가 소에게 물을 먹였다 하니 그 경지에 놀라게 된다. 어쩌면 소부는 보통의 사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 許由가 이렇게 말한다. “설결은 아마도 틀림없이 위태롭게 할 것이다. 齧缺의 사람됨은 매우 총명하고 지혜가 밝은 데다 말재간이 뛰어나고 일을 처리함이 민첩하며 타고난 소질이 남보다 뛰어나다. 따라서 自然(天)에 人爲를 적용하여 모든 일을 이루려고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백성들의 과오를 금지하는 것은 잘 할지 모르나 과오가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서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이런 사람을 천자의 자리에 오르게 하면 그는 틀림없이 지나친 人爲에 편승해서 자연 그대로의 天을 무시할 것이며, 틀림없이 자기 본위의 입장에서 형체 있는 만물의 차별화만을 힘쓸 것이다. (위에서 설결을 설명한 바와 같다.)


설결은 아마도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지혜와 눈치가 빨라 사태와 사람을 신속하게 간파하고 그 각각의 경우에 맞는 준비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자신의 지혜와 눈치를 신뢰하였을 것이고 이것은 모든 것을 자신의 지식과 판단에 근거하여 재단하려 했을 것이다. 이것은 ‘장자’가 가장 우려하는 상황으로서 전형적인 有爲( 人爲)의 과정이요 결과인 것이다, 有爲의 결과는 응제왕에 나오는 혼돈의 죽음처럼 전혀 엉뚱한 일로 나타날 뿐이다.  


틀림없이 知識을 최상의 가치로 존중할 것이며, (큰 근본은 무시한 채)枝葉末節(지엽 말절)과 같은 작은 일에 부림을 당할 것이며, 동시에 外物에 속박될 것이다. 따라서 外物도 이러한 상황에 맞추어 應答할 것이며, 여러 外物의 便宜(편의)에 따라 모든 것을 맞춰 나갈 것이다. 또 外物과 함께 변화해 가면서 처음부터 불변의 恒久性(항구성)이 없어질 것이니 어떻게 이런 人物을 족히 천자의 자리에 오르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비록 그렇지만 一族이 있으면 거기에는 그들이 尊崇(존숭)하는 祖上이 있으니 齧缺은 그런 무리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을지언정 무리의 우두머리들의 우두머리가 될 수는 없다. 그는 세상에 治를 이루기도 하고 亂을 이루기도 하는 張本人이며, 천자가 되면 신하들의 재앙이 되고 신하가 되면 천자에게 해독을 끼치는 존재가 될 것이다.”


지혜는 ‘장자’ 에게 있어 혼란의 원천이다. 공자의 지혜가 그러했고 당시 맹자의 지혜가 그러했을 것이다. 따라서 장자에게 지혜는 지독한 有爲일뿐이다. 지혜로만 무장된 설결이 천자가 된다면 설결의 지혜가 만들어낼 분별과 차별이 다시 세상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지혜로운 세상에서 반드시 따져질 ‘옳고 그름’, ‘길고 짧음’, ‘좋고 나쁨’의 분별이야 말로 ‘장자’가 가장 경계하는 것임을 설결을 통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2017. 12. 31. 오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