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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Apr 10. 2018

수레바퀴를 깎는 사람

장자 13편 천도 제 10 장

장자 13편 천도 제 10장 윤편 이야기 


桓公이 당상에서 글을 읽고 있었는데 輪扁이 당 아래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다가 몽치와 끌을 내려놓고 위로 환공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감히 묻습니다. 임금께서 읽고 계시는 것은 어떤 말입니까?” 

환공이 대답했다. “성인의 말씀이다.” 

윤편이 말했다. “성인이 지금 살아 있습니까?” 

환공이 말했다. “이미 죽었다.” 

윤편이 말했다. “그렇다면 임금께서 읽고 계시는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로군요.”  

환공이 말했다. “과인이 글을 읽고 있는데 수레 기술자 따위가 어찌 논의하는가?. 그럴싸한 이유를 댄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다.” 


윤편이 말했다. “신은 신이 하는 일로 살펴보겠습니다. 수레바퀴를 여유 있게 깎으면 헐거워서 견고하지 못하고 너무 꼭 맞게 깎으면 빡빡해서 들어가지 않으니 여유 있게 깎지도 않고 너무 꼭 맞게 깎지도 않는 것은 손에서 터득하여 마음으로 호응하는 것이어서 입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교묘한 기술이 그 사이에 있으니 신도 그것을 신의 자식에게 깨우쳐 줄 수 없고 신의 자식도 그것을 신에게 받을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나이가 칠십에 이르러 늙을 때까지 수레바퀴를 깎고 있습니다. 옛사람도 〈말로는〉 전할 수 없는 것을 함께 가지고 죽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임금께서 읽고 있는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일 따름입니다.” 


참으로 당돌한 윤편이 아닌가? 춘추 5패의 맹주이자 자신의 나라에 왕이었던 사람에게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왕이 읽고 있는 책을 찌꺼기라고 이야기하다니! 목숨도 목숨이지만 그 태연함이 보통의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장자’가 즐겨 쓰는 중언(重言)의 방식에 의하면 공자나 노자가 이야기할만한 내용을 하찮은 수레바퀴 깎는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다. 일종의 역설에 가까운 이야기다.  


‘장자’적 사유의 단면을 잘 드러낸 이 이야기의 핵심 단어는 ‘찌꺼기’다. 요즘 말로 쓰레기라는 말이다. 성인의 이야기가 쓰레기라는 말인데 여기에 ‘장자’가 하고 싶은 말이 다 포함되어 있다. 어쩌면 23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쓰레기를 부여잡고 통사정하고 있는 모습인데 ‘장자’가 살아서 오늘날 우리가 이 쓰레기를 대하는 태도를 본다면 얼마나 우습고 한심할까 싶다. 


이 외에도 윤편의 말에는 아주 특이한 부분이 있다. 즉 수레바퀴를 깎는 일에는 손의 느낌으로만 터득할 수 있는 미묘한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일반적인 치수로는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오로지 감각만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말인데 이것은 아마도 수레바퀴에 비유된 인간의 마음 또는 세상의 이치 등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장자’적 우언(寓言)이라고 볼 수도 있고, 또는 그냥 치언(卮言)으로 보아도 무방한 말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미묘한 것인가를 이미 ‘장자’는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측량도구로는 도저히 계측할 수 없지만 매우 뚜렷하여 확연한 것이 우리 마음의 모습이 아닌가? 미세하다고 이야기하자니 더욱 미세하고 거대하다고 이야기하자니 너무 거대하여 도저히 표현하거나 가늠할 수 없는 마음의 모습을 ‘장자’는 윤편의 입으로 이야기한다.  


輪扁은 인명이지만 수레바퀴를 깎는 기술자 扁이라는 뜻인데 이름처럼 쓰이고 있다. 司馬彪(서진의 학자)는 “수레바퀴를 깎는 사람인데 이름이 扁이다.”라고 풀이했다. 일본의 ‘장자’ 철학자 福永光司(후쿠나가)는 수레바퀴를 깎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扁이란 이름의 인물로 〈養生主〉편 제2장에 등장하는 庖丁(포정)이나 〈人間世〉편 제4장의 匠石(장석), 〈騈拇〉편 제4장의 盜跖(도척) 등과 같은 방식의 호칭법으로 본다.  


이야기의 桓公은 齊나라(춘추 5패 중 하나인 나라) 桓公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 환공의 이름은 소백이었는데 춘추시대 제후들의 맹주였다. 위의 내용은 韓嬰(한영, 전한 때의 역사학자)의 ≪韓詩外傳≫ 卷5와 劉安(유안, B.C. 179-122)의 ≪淮南子≫ 〈道應訓〉편 등에도 실려 있다. 다만 ≪韓詩外傳≫에는 齊나라 桓公이 아니라 楚나라(역시 춘추 5패 중 한 나라) 成王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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