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입춘 전날

by 김준식

1. 춘래불사춘


엄청 추운 입춘을 맞이하려나 보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봄이 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인 모양이다.


왕소군이라는 사람이 있다. 기원전 1세기경 흉노의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의 왕비로 원래는 한나라 원제의 궁녀였던 사람이다.


오랑캐의 왕비가 되어 황량한 흉노의 땅에서 봄을 그리워했을 왕소군을 생각하며 당나라초의 시인 東方虬(동방규)가 읊은 시가 바로 저 유명한 昭君怨(소군원)이다. 왕소군의 원망 쯤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 시는 어디까지나 당나라 초의 낭만적인 시인 동방규의 생각일 뿐, 소군은 흉노의 왕비가 되어 20년 이상 잘 살았고 더군다나 아들은 왕세자가 되니 요즘 말로 하면 국제결혼으로 대박 난 케이스다. 뭐 할리우드의 배우들이 꿈꾸는 왕족과의 결혼쯤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하지만 동방규의 시는 참으로 서글프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고 한나라를 그리워하다 몸이 말라 저절로 허리끈이 느슨해지니….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엔 꽃과 풀도 없어,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와도 봄이 아니로다.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자연히 옷에 맨 허리끈이 느슨해지니,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가느다란 허리를 가꾸려는 것 아니라네.


2. 남몰래 흐르는 눈물


2월 3일 밤, 가에타노 도니체티(Domenico Gaetano MariaDonizetti, 1797~1848) 작곡, 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 중, 남몰래 흐르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을 들으며 추운 봄밤을 보낸다.


도니체티의 아버지는 마을 전당포의 관리인이었고 도니체티는 세 아들 중 막내였다. 아버지는 세 아들 중 제일 똑똑했던 막내가 법률 공부를 해서 법률가가 되기를 원했지만, 그런 아버지의 소원을 뒤로한 채 도니체티는 음악가가 되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들은 자식들이 권력을 쥐 거나 아니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자리에 앉길 원하는 모양이다.


그가 35세 때 작곡한 이 오페라 『사랑의 묘약』은 희가극이지만 나름 의미를 가지는 이야기도 있다. 그 오페라에서 주인공 농부 네모리노(Nemorino)가 엉터리 사랑의 묘약(사실은 싸구려 포도주)을 먹고 다른 남자 벨코레(Belcore - 군인)에게로 가버린 연인을 생각하며 부르는 아리아가 바로 남몰래 흐르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이다.


도니체티는 불우한 말년을 보내다가 죽었다.


이 아리아를 부른 사람들 중에서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넘어선 사람은 이전도 이후도 없을지 모른다. 20세기 초 위대한 테너 ‘카루소’가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안타깝게도 지금 LP 속에서 가늘게 들릴 뿐이다. 이에 비해 우리 눈앞에서 살아 움직였던 파바로티의 목소리는 리릭 코(Lirico) 테너로서 서정적이면서 동시에 매우 풍부하며, 막힘없는 고음까지 듣는 이의 마음을 뻥 뚫리게 했다. 그런 그도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이제 새로운 테너가 나타날 것이지만 아직은 나에게 파바로티만큼 알려진 테너는 없다.


이 아리아는 라보엠의 Che gelida manina (그대의 찬손)이나 토스카의 E lucevan le stelle (별은 빛나건만)와 함께 파바로티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인간 목소리의 절정을 느끼게 해 준다.


https://www.youtube.com/watch?v=YOA0mxmSf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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