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폭탄테러
지난해 12월 28일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 자살 폭탄테러가 연속해서 발생하였고 현재(2018년 1월 26일)까지 150여 명이 죽고 수 백 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전해진다. 마침 우리나라에서는 밀양에서 수 십 명이 죽은 화재 사건이 발생하여 뉴스는 이것을 집중 보도하는 바람에 그 뒤 소식은 자세히 알 수 없다. IS는 스스로 사건의 배후로 자처했다. 그 미친 신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피를 보아야 만족하는 모양이다. 지금 그 지역 상황의 매우 근본적인 책임의 50%는 미국에 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쩌면 50%가 넘을지도 모른다. 한반도의 정세를 오늘날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들 중 하나도 미국 아닌가? 자유로 포장된 극우 패권주의와 민주로 포장된 천박한 자본주의, 그리고 평등으로 포장된 기득권층의 패악질이 미국이라는 거악이 현재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습이다.
2. 중동 지역 전쟁에 대한 보수주의자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시선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
2015년 영화인 것으로 기억한다.
전쟁은 참혹하다. 어떤 이유가 있건, 뒤틀린 선과 악이 혼란스러워도 전장에서 적과 맞설 때는 일단 죽여야만 한다. 그건 지옥이고, 인간성을 파괴한다. 1953년 이래로 우리나라 휴전선은 그 전쟁의 연장선상에 있고 그 끔찍한 곳에 나의 어린 제자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어김없이 그곳으로 가서 2년 정도를 봉사한다. 나의 동료와 선 후배들 역시 그러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 (영화의 소총은 M-14 Sniper 모델)는 이 참혹한 전쟁터에서 저격수로 이름을 날린, 공식적으로는 160명, 비공식으로 255명을 저격한 최고의 스나이퍼 ‘크리스 카일’의 이야기다.
카일의 아버지는 카일에게 사격과 인생에 대한 태도를 가르친다. 세상에는 양과 늑대와 양치기 개가 있다. 카일에게 양치기 개가 되라고 강조한다. 즉, 부당하게 공격을 받는다면 반드시 되갚아줘라. 끝까지, 처절하게. 이것이 카일의 삶의 지표였고 또 그대로 실행한다.
로데오 선수였던 카일은 서른이 되어서야 군대에 가기로 결심한다. 미국을 공격한 적을 응징하겠다는 마음이었다. 네이비 실(미국 해군 특수부대) 훈련이 마무리될 무렵 9·11 테러가 일어난다. 신을 위하여, 조국을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카일은 저격수가 된다. 카일에게 알카에다는 명백한 적이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카일의 첫 번째 저격 장면으로 시작된다. 대전차용 개인용 로켓포를 들고 미군에게 달려가는 열 살 남짓한 아이를 저격한다. 전쟁터도,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도 결코 선과 악이 확연하게 나뉘지 않는다. 하지 만카 일은 단순하다. 그는 그의 아버지의 주문대로 양치기 개가 되기로 했기 때문에. 아이를 쏘지 않으면 몇 명이 죽거나 다친다. 그래서 방아쇠를 당긴다. 연민도 있고, 가슴도 아프지만 자신의 행위에 대한 회의는 없다.
잘 알려진 것처럼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열렬한 공화당 지지자다. 또 총기 옹호론자이다. 하지만 그는 인생에 대한 통찰이 있고, 누구보다 사려 깊고 섬세하기까지 하다. 이런 이스트우드가 보수파라는 사실이 가끔은 의아하기도 하다. 하지만 진보와 보수는 어느 한쪽만이 옳거나 그른 것이 아니다. 각자 수호하는 가치는 세상과 인생에 대한 태도를 말할 뿐이다. 단지 이스트우드는 미국의 가치를 존중하고, 자유와 권리를 위해 개인이 싸워야 한다고 믿는다. 여기까지는 우파이지만 이 선을 넘으면 극우가 되고 패권주의자가 되고 우리나라에서는 일베가 된다.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크리스 카일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영웅상이다. 카일은 자신이 믿는 가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그렇다고 해서 이스트우드가 카일을 완전무결한 터미네이터로 그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파병에서 돌아올 때마다 카일은 평화로운 세상이 낯설어진다. 미국을 구하기 위해 전우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세상은 너무나 나태하고 무심하다. 그런 카일을 이스트우드는 편들 지도 비판하지도 않는다.
마지막 장면은 카일이 옛 전우를 만나 길을 떠나는 장면으로 끝나고 자막으로 그의 죽음을 알린다. 바로 그 전우로부터 죽임을 당했다고, 그 수많은 전투에서도 죽지 않았던 카일이 평온한 미국 땅 자기 동네에서 동료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실이 내게는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이스트우드도 그랬던 모양인지 끝내 그 장면은 사진으로 대체하고 만다.
3. 평창올림픽
평화를 위한 올림픽이라지만 이명박을 초대한 것은 아이러니다. 이명박은 단순히 부정부패를 한 정치지도자가 아니라 이 나라 모든 민중의 피를 빤 단군이래 최대의 탐관오리다. 그 이명박이 평화를 위한 올림픽에 등장하면 이 나라 민중은 어쩌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