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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Aug 28. 2016

보티첼리의 풍자

La Calunnia di Apelle(1494~95)

산드로 보티첼리 (Sandro Botticelli) 작, 나무에 템페라, 62 x 91 cm,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어느 분야든 최고의 자리에 오르면 경쟁자들의 날카로운 견제를 받게 마련이다. 그리고 지나친 경쟁심이 누군가를 부당하게 궁지로 몰아넣은 수많은 사건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보아 왔다.


이 이야기는 B.C. 350년경 이름을 떨친 고대 그리스의 전설적인 화가 아펠레스 (Apelles)가 그린 한 점의 그림에 관한 것이다. 아펠레스의 그림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사람은 고대 로마 시대 문인으로 활동하던 사 모 사 타 (Samosata) 출신의 루키 아누스 (Lukianus, 120? – 180?)다.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를 다스리고 있던 당시, 화가 안티 필로스 (Antiphilos)는 시기와 질투심으로 동료 화가 아펠레스를 중상모략으로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안티 필로스는 알렉산더 대왕의 오른팔 프톨레마이오스 (Ptolemaios) 장군에게 아펠레스가 왕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거짓 정보를 흘린다. 안티 필로스의 거짓말에 넘어간 프톨레마이오스 (Ptolemaios) 장군은 그 말을 믿게 되었고, 아펠레스는 궁지에 몰리는 듯하였지만 곧 그가 무고하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억울하게 누명을 써 하마터면 목숨까지 잃을뻔한 아펠레스는 화가 나서 무고한 자신을 중상모략으로 곤경에 빠뜨린 사람들에게 복수할 작정으로 그림을 한 점 그리게 된다. 화가 아펠레스는 그림에 당나귀 귀를 가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왕 미다스 (Midas)(1)와 그의 어리석고 우둔한 조언자들을 그려 넣는다. 그 그림을 모티브로 르네상스 시절 이탈리아의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가 내용은 똑같지만, 그러나 인물의 독자적 해석을 시도한 그림을 그리게 된다.


로마의 루키 아누스가 당시 아펠레스의 그림에 대해 묘사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그림의 오른편에는 커다란 귀를 가진 한 남자가 앉아 있다. 이 귀는 미다스의 귀가 분명하다. 그는 화면의 뒤쪽에서 서서히 그에게로 다가서는 ‘책략’을 향해 손을 뻗고 있다. 남자의 좌우로 두 명의 여자가 서 있다. 그중 한 명은 ‘무지’를,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불신’을 의인화하고 있다. 화면의 좌측으로부터 ‘중상모략’이 육감적이고 흥분에 찬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둔갑해 남자를 향해 오고 있다. 그녀의 몸짓과 움직임은 분노와 화로 가득 차 있다. 왼손에는 활활 타오르는 횃불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어느 젊은 청년의 머리채를 질질 끌고 있다. 이 소년은 두 손을 하늘로 치켜들고 신에게 자신의 증인이 되어줄 것을 호소한다.

‘중상(中傷)’을 의인화하는 서 있는 소녀는 그 앞에 가는 창백한 얼굴에 아주 고약하게 생긴 남자를 따르고 있다.  찌를 듯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이 남자는 오랜 병환으로 바짝 마른 것처럼 보인다. 이 남자는 ‘질투’를 의인화하고 있다. 그 뒤로 두 명의 여자들이 더 보이는데, 이들은 ‘중상’을 의인화한 소녀를 화사하고 아름답게 치장하고 있다. 이 여인들은 ‘간계’와‘속임수’를 의인화하고 있다. 이들 가장 뒤로 찢어진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슬픈 표정의 인물이 보인다. ‘후회’에 대한 의인화이다. 후회는 흐느끼며 뒷걸음질치고 있다. 후회의 절망감에 휩싸인 그녀는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진실’을 응시하고 있다. “

루키 아누스의 이 같은 묘사에 따라 후대의 화가들은 중상모략에 빠진 아펠레스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산드로 보티첼리가 1495년경에 그린 바로 이 작품이다. 지금 우피치 미술관에 가 보니 비너스의 탄생 옆에 걸려 있어, 관람자의 시선을 끌지 못하고 있었다.


보티첼리가 그린 이 작품은 누군가의 의뢰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기록에 의하면 보티첼리는 이 작품을 안토니오 세그니(AntonioSegni)라고 하는 자신의 친구에게 대가 없이 선물했다고 한다.


신화적 모티브를 회화에 끌어들임으로 르네상스 회화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보티첼리가 루키 아누스가 전하고 있는 아펠레스의 이야기를 어떻게 회화로 표현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보티첼리는 가로로 길쭉한 화면(거의 오늘날의 16:9 비율과 비슷하다.)을 선택하였고 공간을 분할하기 위하여 건축적 요소들을 활용하고 있다. 보티첼리가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설정한 장소는 육중한 기둥들이 떠 바치고 있는 아치가 외부로 시야를 열어주는 곳이다.


사각기둥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에서 흔히 나타나는 것처럼 움푹 니치(niche)(2)가 파여있고, 그 안에는 조각 상들이 설치되어 있다. 기둥 위로 파도가 치듯 흐르는 완만한 아치와 원통형 궁륭은 보티첼리가 얼마나 정확하게 원근법을 구사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보티첼리는 감상자의 연속적인 시선의 흐름을 이미 작품의 구성을 통하여 결정해 두고 있는데 그려진 이 건축구조는 마치 한 편의 연극처럼 그 앞에서 연출되고 있는 장면의 무대장치가 된다. 바닥에 깔려 있는 붉은 카펫을 따라가면 왕이 앉아 있는 높은 단에 다다르게 된다. 길쭉한 당나귀의 귀를 가진 미다스 왕이다. ‘무지’와 ‘불신’이 왕의 귀에 속삭인다.


수도자의 복장을 한 “질투”가 타오르는 횃불을 들고 있는 “중상”의 손목을 끌고 왕 앞으로 향하고 있다. 그녀에게 머리채가 잡힌 벌거벗은 소년은 중상모략에 빠진 아펠레스 자신의 모습이다. 중상을 그럴싸하게 치장하고 있는 간계와 속임수, 그 뒤를 검은 옷의 후회가 따르고 있다. 후회는 고개를 돌려 '진실'을 바라보고 있다.


인체를 묘사함에 있어서 가장 '보티첼리스러움(콘트라 포스트)'을 보여주는 인물은 ‘진실’을 의인화하고 있는 나체의 여인이다. 이 여인은 보티첼리의 또 다른 명작 “비너스의 탄생“에 등장하는 비너스와 아주 닮아 있는데 길게 늘어진 곱슬의 금발이 살짝 흩날리고 두 발을 다소곳이 모으고 서 있는 그녀는 보티첼리의 작품에서 우리가 매혹을 느끼는 바로 그 우아함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루키 아누스가 전하는 아펠레스의 이야기를 소재로 그린 또 다른 화가들의 작품이 있다. 화가들은 각자 자신의 회화적 언어를 통하여 이 이야기를 해석하고 있는데, 이들을 서로 비교해 보면 각 작가들의 특징뿐만 아니라 이들이 속해있던 시대의 미술적 경향 또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 프리기아의 왕. 그리스의 부유한 왕으로 유명하다. 미다스는 신들끼리 음악 솜씨를 겨룰 때, 생각 없이 심판을 보다가 시합에 진 아폴론의 심술로 당나귀 귀가 된 전설이 있다. 미다스는 귀를 가리고 다녔지만 이발사에게 당나귀 귀를 들키고, 이발사가 몰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며 소리 지른 게 퍼져서 망신을 당했다는 전설이 있다. 황금 손 미다스와 같은 인물이다.


[2] 장식을 목적으로 두꺼운 벽면을 파서 만든 움푹한 곳으로, 보통 그 모양은 반원형, 윗부분은 반구형인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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