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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Feb 11. 2018

2월, 학교 풍경에 대한 고민

2월의 학교 풍경에 대한 고민


학교의 한 해는 그 해 3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로 지금 2월은, 다음 해(실제 달력에는 같은 해지만)의 준비를 하는 달이다. 초 중등 교사들은 통상 해마다 자신의 고유 업무가 바뀐다. (초등과 중등은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간혹 같은 업무를 2~3년 연속해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해마다 바뀌는 것이 일반적이다. 업무의 연속선으로 이해해보면 이 부분도 문제는 있지만 업무의 경중으로 볼 때는 해마다 바뀌는 것도 분명 장점이 있기는 하다. 올 한 해 학교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될 것인가? 얼마나 힘들거나 혹은 편한 일을 하게 될 것인가? 또는 담임을? 부장을?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놓고 분위기를 타진하거나 혹은 이미 결정되는 분위기가 이즈음의 교무실 분위기다. 늘 그렇지만 그 와중에 이기적인 욕심에서 비롯되는 약간의 감정적인 충돌도 일어나는데 크게 문제 될 일은 아니다. 어느 조직이든 이런 일은 있고 또 그런 감정적 문제도 항상 존재해 왔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토대, 즉 학교 구조의 문제다. 지금의 학교 구조는 교장, 교감이 정점에 위치하고 각 업무에 담당하는 교사들이 하부를 이루고 있는 피라미드 구조로 형성되어 있다. 이 구조에서 교장과 교감은 당연히 지배적인 위치에 있게 되고, 하부의 교사들은 교장 교감의 의도에 따라 조직되거나 운영된다. 따라서 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의견은 구조적으로 상부에 전달되는 내용이 제한되거나 혹은 차단되기 쉽다. 간혹 일부가 수용되더라도 그 의견은 사실은 교장과 교감의 영향력을 무시하기는 어려워서 애당초 교사가 생각한 의견과는 많이 달라지고 만다.


신 학기 학교 업무분장은 현재 교장의 전권에 속한다. 당연히 교사의 의견이 반영되기는 하지만 그것도 교장의 의사에 반하면 무시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의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 초, 중등 교육법이다. 초, 중등 교육법 제20조(교직원의 임무) ① 교장은 교무를 통할(統轄)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도 · 감독하며, 학생을 교육한다. 는 규정을 보자. 통할이라는 단어가 먼저 눈에 띈다. 통할이란 모두 거느려 다스린다는 뜻이다. 거느린다는 말은 부양해야 할 손아랫사람을 데리고 있다. 혹은 부하나 군대 따위를 통솔하여 이끌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분명 21세기 미래지향적 교육에 어울리는 말은 아니다. 먼저 ‘데리고 있다’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력자이거나 거의 할 수 없는 능력이 미약한 자를 보살피는 수준의 행위를 뜻한다. 또 ‘통솔하여 이끌다’라는 뜻은 戰場이나 혼란의 상황에서 외부의 위력으로부터 자신의 무리를 방어하기 위해 그리고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적절한 권력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한 말이다.


이것이 교육이라는 것과 어울리는 말인가? 이 말로만 해석해보면 현재(법적으로) 교장의 위상은 전장에서 지휘관이나 혹은 어리석은 무리들을 이끄는 우두머리의 모습이다. 교사 전체를 어리석은 자들로 보거나 학교를 전투행위가 있는 곳으로 보는 말로써 21세기 현재 교육의 장에 쓰일 수 있는 말이 아니라 ‘군사적’인 상황과 ‘깡패’들의 두목들에게 보장된 권력과 권위를 법률적 용어로 가다듬었을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법은 지난 1949년 12월 31일 제정·공포된 이래(제국주의 일본의 법을 그대로 모방) 무려 38회의 재, 개정을 거쳤으나 학교 분위기와 상황을 개선할 가장 핵심적인 이 조항(20조)을 손 본 것은 단 1회에 [2012년 (법률 제11219호, 2012.1.26.) 일부 개정] 그쳤고 그것도 전체적인 내용을 수정했다기보다는 권한의 법령 위임 개정으로서 본래 교장이 가지는 군사적이며 패권적 권위는 법률상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신 학기 업무 분장으로 돌아가 보자. 법령에 적시되어 있는 것처럼 학교장이 학교를 지도 감독하는 현재의 학교제도에서 업무 분장을 민주적으로 바꾸는 것은 여러 개의 산을 넘어야 하는 문제이기는 하다. 가장 먼저 이것을 가로막는 산은 당연히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법률적 제도적 문제다. 이 조항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현재의 제도에서는 국회의원밖에 없다. 법률을 제정하고 또 개정하는 것은 국회의 전권이다. 따라서 이것은 일단 보류하자. 우리의 능력이 아니므로.


두 번째 산은 학교 내부에 존재하는 권위주의와 이에 따른 답습(踏襲)이다. 권위의 주인공은 당연히 교장이다. 교장의 권위와 권력은 천신만고 끝에 승진하여 몇 년 남지 않은 교직 생활을 자신의 뜻대로 학교를 운영해 보려는 교장들이 가지고 있는 최후의 보루이자 무기다. 이것을 내려놓으라는 것은 그들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답습은 말 그대로 따라가는 것인데 작년을 기준으로 올해를 설계하는 어리석은 방식이지만 고백하건대 글을 쓰는 스스로도 삼십몇 년을 답습으로 지내왔다. 그러니 교육이 바뀔 리 없고, 날로 나빠지고 힘들어진다.


또 하나의 산은 교사 내부에도 있다. 교육을 장악하려는 권력(국가 권력이든 또는 그 무엇이든)들은 학교 조직 내부에 ‘승진’이라는 교묘한 부비트랩(건드리면 터지는 위장 폭탄)을 설치해 두었는데, 이것을 피해서 정년을 마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곳곳에 인계철선(부비트랩이 폭발하도록 하는 가늘고 잘 보이지 않는 철선)을 설치해 두어 교사들을 조종하고 위협한다. 이러한 상황의 결과는 이미 보고 있는 것처럼 교사들의 정상적인 사고를 위축시키는데, 그 위축의 정도가 지나치면 피해의식에 사로 잡히게 하고 심지어 패배의식에 빠지게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학교의 민주적 운영은 애당초 불가능하거나 설사 민주적으로 운영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민주’라는 이름만을 차용한 어용이 되고 말 뿐이다.  


2017년 새로 옮긴 학교의 업무 분장 방식은 이러했다. 새 학년도 업무 분장 표를 각 교사들에게 컴퓨터상 액티브로 돌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업무를 골라 빈칸에 자신의 이름을 채우라는 식이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은 일사천리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상황으로 진행되었고 마침내 춘계방학이 시작된 지금도 나는 2018년 업무가 무엇인지, 담임은 몇 학년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일을 두고 기어코 민주적이라고 한다면 약간 불만은 있지만 수긍할 수는 있다. 그러나 문제는 미리 업무 분장을 구성한 그 방식이 ‘답습’이라는 비민주적인 방식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업무 분장표는 2017년을 기준으로 만들었을 것이고 그것은 2016, 2015……그 이전을 기준으로 했을 것이다. 그 위에 사람만 바꾸는 식의 행위가 학교의 발전을 막 고민주 적 분위기를 망가뜨리는 핵심 원인인데도 지금의 학교 관리자들은 그것을 간과하고 있다. 거기다가 여전히 학년 담임이나 학년 부장, 비교적 교장 교감이 장악하고 싶은 업무 담당 부장은 교장 교감이 제공한 방식대로 끼리끼리, 소곤소곤, 마치 시정잡배들의 거래처럼 그렇게 일을 결정하고 말았다. 물론 형식은 있었다. 업무 희망 서라는 양식을 받아서 그것을 기초로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희망서 조차도 조정되고 혹은 폐기되는 일을 나는 여러 번 보아왔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인가? 당해 년, 12월 학년 말 고사를 치르고 난 뒤 동계 방학에 들어가지 전에 교장 교감은 교사들의 의견을 듣는 기회를 제공하고(동등한 비율로 교장 교감도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거기서 이일을 조정하면 된다.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약 3~4 회의 모임이 필요하다. 일단 의견을 듣고 교감이나 교장은 그 의견을 수렴하여 방학 중에 검토해 본다. 이 과정에서는 교장, 교감은 교사들의 의견에 대하여 어떤 수정이나 개입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겨울 방학이 끝나고 난 뒤 2월, 그러니까 지금, 다시 전체 교사들의 변화를 듣고 각 사정을 조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춘계방학이 되기 전에 발표하고 확인하여 새 학기를 준비하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방법적인 변화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장 교감의 의견이 지배적 위치를 점하지 않는 것이며, 대부분의 일이 전체 공개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 이런 과정은 자칫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각 교사의 이익이 충돌하고 동시에 능력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즉 모든 것을 교장 교감 주도하에 구성하는 것보다는 교사 상호 간의 이해도는 분명히 높다. 또 이런 과정을 2~3년 거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민주적인 조정과 운영이 정착되기 마련이다. 다만 해 보지도 않고 혼란을 두려워하고, 또 참여하지 않으려는 소극적 태도가 문제라면 문제 일 수 있다.   


이미 우리 학교는 비민주적인 과정으로 이 일이 거의 결정되어 버렸다. 교정실에 가서 나의 의견을 개진해 보았으나 교장 선생님의 반응은 고민해 보겠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한 명의 교사가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지금의 체제하에서 교장에게 무슨 부담으로 작용하겠는가? 그저 웃고 말아야 하는가? 씁쓸하다. 전교조가 법외 단체가 아니었다면 전교조 교사들의 이름으로 의견을 개진해 볼 수 있었겠지만 지금이야 전교조 학교 분회는 그저 친목 단체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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