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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Dec 24. 2017

주말, 몇 가지 생각

1. 교원능력개발평가


지난 수요일 아침(2017.12.13), 출근을 했더니 비슷한 연배의 동료 교사가 어제(화요일 12.12 –본인은 시내 출장) 일을 볼멘소리로 들려주었다. 교장 선생이 대뜸 불러 이야기 하기를 교원능력개발평가에서 학생평가가 0점이 나왔고(정확하게는 누구도 평가를 하지 않아 결과 값이 없는 상태, 즉 0점이라고는 볼 수 없음) 교육청에서 온 절차에 의하면 교장이 이것을 당해 교사에게 고지하여야 하는데 그 절차를 이행하는 것이라고 하며 더불어 능력개발 연수 60 시간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교원능력개발평가가 여전히 시행되고 있는 것에도 화가 났지만 그러한 사태에 대한 교장 선생의 접근방식에도 화가 났다. 뿐만 아니라 단 한 명의 평가자도 평가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단지 0점이라는 사실을 다분히 업무상 기계적으로 교장에게 알려 준 업무 담당자에게도 화가 났다. 그리고 화를 식힌 뒤 교장실에 가서 문제의 핵심(교장 선생의 해결방법과 업무 담당자의 업무 방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실 이 문제의 근본적인 책임은 2010년에 이 제도를 도입한 교육부에 있다.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을 교육에도 도입하고야 말겠다는 국가권력의 오만과 교육에 대한 인식 부족, 그리고 평가방법과 절차의 미비, 그리고 결정적으로 교사에 대한 비루한 인식 등이 맞물려 2010년 급작스레 시행되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러한 국가권력이 강행하려는 평가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2011년에 ‘오마이뉴스’에 올린 ‘나는 동료평가를 거부한다’( http://bit.ly/Wk0TVH ) 때문에 적지 않은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이런 문제에 봉착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2011년 당시, 나에게 신문기사를 강제로 내릴 것을 강요했던 도 교육청의 장학관과 감사관은 이제 퇴직을 하고 자연인으로 돌아가 있을 것인데 당시 그들이 보여 준 놀랍고 엉뚱한 멸사봉공(?)의 자세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러면 왜 2017년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원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17년부터는 평가자(학생, 학부모)의 평가를 자율에 맡긴다는(물론 이전에는 학생들에게 거의 강제적으로 평가를 하도록 했다.) 공문이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교원능력 평가가 불요 불급한 사실임이 교육계 전체에 의견으로 집약되어 평가 방법의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또 개인적으로도 평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 수업 중 아이들에게 평가를 강조하지 않았기 때문에(평가자는 평가 대상자의 담임 반을 중심으로 연결된다.) 어쩌면 이런 일은 예견된 결과였다. 현재 본교 70여 명의 교사 중 평가를 받은 교사들의 대부분은 학생 평가자가 5~6명 내외인 점과 그중 담임을 맡고 있는 10여 명의 교사에 대해서는 단 한 명의 평가자도 평가를 하지 않은 것을 보면 학생들은 이 평가 자체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2. 공립인문계고등학교 학교장의 역할


2017년 현재 인문계 고등학교의 핵심 목표는 좋은 대학(이른바 SKY… 불리는)으로 진학시키는 것이다. 슬프지만 사실이고 아프지만 나 역시 그 대열에 서 있다. 모든 교육과정이 그것에 맞춰지고 모든 학생활동이 그것에 적합해야 한다. 이 목표에 부합되는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부차적인 제반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단위 학교 최고 책임자가 바로 교장이다. 막중한 느낌도 있고 대학을 위한 꼭두각시라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다.


본교의 교장은 교사 시절 본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고 그 후 교육전문직을 거쳐 2017년 본교에 부임했다. 일 년 동안 같이 근무했지만 나의 불찰로 인해 그 양반의 교육철학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아니 정확히는 그 양반의 철학을 알 수 없었다. 분명 그 양반도 교육철학이라는 것이 있을 것인데 말이다. 평소 교사 승진 제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나지만 천신만고 끝에 점수를 획득하고 승진한 이 양반들의 삶을 평가할 자격은 내게 없다. 다만 그렇게 승진한 그들의(학교 현장에서 교육에 대한) 태도와 방향이 교사에게 그리고 학생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번 일만 해도 그렇다. 교원능력개발평가가 이 나라에 도입된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교육도 자본주의식 성과를 계량적 지표로 확인하고자 하는 지극히 단순하고 천박한 사고의 결과다. 지금도 국가와 교육관료들은 교육이야말로 국가 백 년의 대계라는 말에 주억거리면서도 실제 행동은 교육을 시장논리로 파악, 운영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 교장 선생 또한 그 논리에서 어쩌면 한 치도 벗어나 있지 않을 것인데 그 분명한 증거가 이번 일로 드러난 것이다. 교사에게 교원능력개발평가의 결과를 통지해야 할 의무가 교장에게 있다고(교장실에 항의하러 간 나에게 그와 관련된 공문을 보여주며 자신의 행위는 매우 합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하며 교사를 교장실에 불러놓고 점수가 0점이라고 고지하는 것이 교장의 임무쯤으로 알고 있는 교장 선생의 교육철학은 과연 교육이 백 년의 대계라는 생각과 얼마나 부합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를 테면 그 장면에서 우리가 바라는 교장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먼저 그러한 결과를 고지받은 교장은 본교에서 수행된 전체적인 교원능력개발평가의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즉,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평가자(학생)의 문제인지 아니면 피 평가자(교사)의 문제인지를 충분히 파악해야만 한다.(최소한 이번 일만 놓고 보면 문제의 원인은 평가자의 평가를 자율로 한 것이 결정적 원인이다. 그러니 피 평가자의 문제는 아니다.) 물론 이런 일은 많은 시간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판단에 따라 평가자의 문제라면 도 교육청에 평가방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공문의 지시와 무관하게) 그 문제점을 시정할 것을 요청해야 한다. 그러한 요구가 수용되어 문제가 해결된다면 교장은 교사들에게 전후 좌우의 일을 설명할 필요는 있다. 만약 수용되지 않는다면 교장은 공문의 지시사항(사실은 협조에 가깝다.)에 불응하고 교사의 권익을 충분히 보호하여야 한다.(교사에게 그 어떤 고지도 해서는 안되며 동시에 평가의 결과를 보고하고 학교 단위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이런 교장이 있을까 만) 그런데 우리의 교장 선생은 어떤 고민도 없이 담당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실을 개별 교사에게 고지하는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고 자신의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3. 2017년 현재, 학교, 민주주의. 


전북 군산영광여자중학교에 근무하시는 정은균 선생님이 2017년 지은 책 『학교 민주주의 불한당들』 제2부 학교 민주주의 불한당들 1장 불한당들의 무기, 1, 방패 중 아홉 번째 글 책무성과 책임성(우리는 시키는 일만 한다.)의 내용에 이런 글이 나온다. 


“교무실은 매뉴얼이 규정하는 기계적인 업무 수행 절차의 지배를 받는다. 교육 전문가로서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기회가 줄어든다. 각종 지침과 요령에 순종하는 기계 교사가 넘쳐난다.”


교원능력개발평가에도 매뉴얼이 있다. 기계적으로 그 매뉴얼을 지키는 것이 지금의 분위기에서는 너무나 당연하다. 단위 학교에서 교감의 역할은 이 매뉴얼을 강조하고 그것에 순응하도록 교사를 다그치는 역할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교원의 능력 평가라는 거대한 전제조건을 생각해 본다면 과연 매뉴얼대로 이 일을 진행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 매뉴얼을 만든 사람은 안타깝게도 교육 전문직원들이다. 물론 교사를 거쳐 거기에 도달했지만 그들은 교사가 아니다. 그들이 만든 교원의 능력 평가 매뉴얼에 교사들은 기계적으로 업무를 처리한다. 매뉴얼에 벗어나는 것은 금칙 조항처럼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 곧 매뉴얼을 준수하는 것이라고 튼튼하게 믿고 있으며 매뉴얼을 준수했다는 것에 자부심조차 느낀다. 본교 교원능력개발평가 담당자의 태도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물론 이런 일에 자율성이 개입될 소지는 적다. 하지만 전체적인 매뉴얼의 범위 안에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면 최소한의 자율성은 확보될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나의 항의를 받은 교장의 태도는 나를 한 번 더 화나게 만들었다. 업무 담당자의 업무처리를 확인하고 업무담당자로 하여금 그 사실을 나에게 고지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나의 항의를 아전인수 식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즉 자신의 책임과 자신의 역할은 쏙 빼버린 채 업무 담당자와 나와의 문제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내가 항의한 근본 취지는 완전히 묵살된 것이나 다름없는 조치이자 태도였다. 그러면 그렇지! 저것이야말로 점수로 천신만고 끝에 승진한 자들의 대표적 태도가 아닐까? 자신은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일은 그저 매뉴얼에 따른 기계적 태도임을 우리 교장은 알고 있을까? 


2교시 후에 업무담당자에게 면박에 가까운 말을 했더니 6교시에는 교장이 직접 나를 찾아왔다. 여러 가지 변명에 가까운 말을 했지만 나는 수용할 수 없었다. 다시 7교시를 마치니 업무담당자가 다시 왔다. 나는 그만 이쯤에서 끝내자고 제안했다. 더 이상 에너지를 쓸 문제도 아니거니와 달라질 것이 없는 무의미한 논쟁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저 항의의 표시로 만족하려니 조금 쓸쓸해지는 느낌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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