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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Mar 04. 2018

봄바람

自來無何有之鄕描春風 (자래무하유지향묘춘풍)*  

(아무것도 없는 虛無의 고을에서 온 봄바람을 그리다.) 


昧然實不定 (매연실부정) 희미하여 실체를 알 수 없지만, 

徘動覺處處 (배동각처처) 오락가락하니 곳곳에 있음을. 

虛靜膨薄布*(허정팽박포) 고요히 얇은 베를 부풀리니, 

遠近風吹停 (원근풍취정) 여기저기 바람은 불다 멈추리라. 


2018년 3월 3일 오전, 아파트 베란다 문을 열어두었더니 봄바람이 슬며시 커튼을 들어 올린다. 실체 없는 바람이 커튼이라는 실체를 움직인다. ‘있다’ 하여 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없다’ 하여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공간은 나의 분별력으로 파악할 수 없는 거대하고 절대적인 곳이다. 나는 다만, 거기서 잠시 머물다 사라질 뿐이다. 마치 봄바람처럼.  


* 無何有之鄕 廣莫之野(무하유지향 광막지야) : 아무것도 없는 虛無의 고을, 끝없이 펼쳐진 廣遠莫大한 들판. 『장자』 전편을 통해 遊라는 글자는 매우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 遊는 ‘장자’ 사상 가운데 중요한 思惟의 도구이다. 그것은 人爲의 세계에 존재하는 작은 有用을 넘어선, 목적의식이 없는 無爲自然의 遊인데 이 遊의 마당이 바로 無何有之鄕이자 廣莫之野이다. 봄바람이 거기서 왔다고 가정하여 글을 지었다. 


* ‘虛靜’은 노자 16장에 등장하는 말이다. “虛를 극진히 이루고 靜을 독실하게 지킨다 [致虛極 守靜篤 치허극 수정독].”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마음을 비워 지극히 고요한 상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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