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계절이 바뀌는 시점마다 우리는 그 계절에 학습되었던 예전의 감각을 애써 머릿속에서 찾아내서 지금 느끼는 계절의 감각과 대조하곤 한다. 대개는 비슷하거나 간혹 약간의 차이를 보일 때도 있다. 하여 우리는 예전의 감각을 계절마다 재빨리 꺼내 그 계절에 빠르게 익숙해지고 동시에 지금의 계절의 감각 또한 예전의 감각을 저장했던 것처럼 그 감각들 위에 중첩적으로 저장한다.
계절의 감각이란 우리의 오감 전체에서 느끼게 되는데 계절의 독특한 냄새로부터 시작해서 피부로 느끼는 바람의 세기와 온도, 빛의 각도와 눈부심의 정도, 입으로 전해져 오는 계절의 특별한 맛,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사물의 경계와 빛깔 그리고 이 감각들이 서로 교차되어 나타나는 감각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계절의 느낌은 매우 복잡하고 섬세하다.
한편 감각으로 일깨워진 우리 내부에는 미처 감각만으로는 도저히 파악될 수 없는 모호하고 부정형의 이지적 작용도 분명 있다. 이것은 먼 옛날 인간으로 살아왔던 우리의 조상 때부터 집적되어 늘 우리의 유전자 속에 깊이 내재된 것들로서 라디오나 휴대폰의 주파수처럼 일정한 대역에서 동조 가능한 주파수처럼 특정 시기, 혹은 특정 장면에서 여지없이 나타나 우리의 의식과 의지에 전면화되기도 한다.
소리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음악에 대한 것 역시 이러한 계절 감각처럼 학습과 경험, 그리고 이지적 작용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특정 시점에 들었던 노래와 음악에 대한 강한 느낌은 오래 유지되어 특별한 경우에는 일생 동안 그 음악에 반응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이 음악,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중 봄 1악장은 우리에게 영원히 ‘봄’에 대한 상징으로 남아있지 않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LX_t_272NmM
2.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é, 1845-1924)가 작곡한 Élégie는 포레의 가장 유명한 첼로 독주곡이자 아름다운 작품이다. 간결한 세 도막 형식, 가슴을 울리는 아름다운 선율과 사이사이 삽입된 피아노 연주에서 얼핏 생상스(Camille Saint-Saëns, 1835-1921)가 느껴지기도 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Élégie는 그리스어의 엘레게이아(elegeiā 애도가)에서 유래된 말로 비가 ·애가 ·만가라고 번역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는 엘레지라는 독특한 영역의 생겨났고 그 엘레지의 여왕이 바로 이미자이다.
이미자가 부르는 동백아가씨는 봄과 무관하지만 동백이라는 실체와 결합되어 우리에게 저장되어있다가 동백이 피는 시기에는 어김없이 우리를 자극하게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SI8x7geRS44
3.
3월이 마지막으로 가는 주의 월요일 저녁, 탱고 음악을 듣는다. 이상하게도 나는 평소 탕게로스(Tangueros: 탱고 춤을 추는 사람)의 관능적인 춤사위를 보고 있으면 왠지 우울해진다.
오로지 나의 경우이겠지만 격정적인 감정의 뒤쪽에 도사린 허망함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내 삶의 과정에서 비롯된 일일지도 모른다.
찌든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항구도시 이민자들이 그 격정적인 감정을 춤과 음악으로 분출했던 탱고는 스페인의 플라멩코와 함께 가장 슬픈 그러나 매우 강렬하고도 인상적인 예술이다. 플라멩코의 날카로운 여자 무용수 구두 뒤축의 굴림으로부터 이어지는 흐릿하지만 또렷한 캐스터네츠(Castanets)의 조합과 늘어지듯 혹은 끊어질 듯 흐느적거리다 갑자기 격정적이고 관능적인 탱고의 춤사위에서 우리는 매우 비슷한 슬픔의 줄기를 발견하게 된다.
탱고는 아르헨티나의 음악이라기보다는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라는 도시의 것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카’라는 항구 언저리에서 태어난 탱고의 선율을 흐릿한 봄밤, 지구의 반대편에서 중년의 남자가 듣는다.
A. Piazzolla. Libertango
https://www.youtube.com/watch?v=kdhTodxH7G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