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석의 이야기
1515년 Raffaello Sanzio da Urbino(라파엘로의 본명, 줄여서 Raphael이라고 표기)는 Judgement of Paris(파리스의 심판)라는 동판화를 제작한다. 동판화의 내용은 제목에 표시되어 있는 것처럼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파리스의 심판’을 묘사한 것이다. ‘파리스의 심판’이란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이 거행되었을 때 여러 신들이 잔치에 초대되었으나 불화의 여신 에리스만 제외되었다. 이에 화가 난 에리스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쓰여 있는 황금 사과를 연회석에 던졌는데 아테나, 헤라, 아프로디테 세 여신이 이 사과를 두고 다투자 곤란해진 제우스는 그 심판을 파리스에게 맡긴 이야기를 말한다.
Édouard Manet(에두아르 마네, 1832~1883)의 Le déjeuner sur l'herbe (풀밭 위의 점심)는 바로 라파엘의 동판화 ‘파리스의 심판’ 중 일부 장면에서 모티브를 얻어 그려졌는데 마네의 그림을 보자. 그림을 보면 숲 속에서 남자 2명, 여자 2명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저들은 뭘 하고 있는 걸까?
우선 남자 두 명이 입고 있는 옷으로 보아 계절 상 더운 날씨는 아닌 듯하다. 그런데 풀밭 위에 앉은 여인 한 명은 옷을 다 벗고 있다. 더워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왜 벗고 있는 걸까? 알 수 없다. 그리고 점심 식사를 어떻게 했는지 음식이 담긴 바구니는 뒹굴고 있고 바닥으로는 과일이 떨어져 있다. 그렇다고 사람들 표정이 싸움을 하고 있는 느낌도 아니다. 이야기의 연결고리가 없다. 여러 가지 억측만 가능할 뿐,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그 어떤 메시지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또 남자 두 명 사이 공간에 위치한 몸을 앞으로 숙인 저 여자는 또 누구란 말인가? 그리고 옷차림은 거의 속옷 차림인데 저곳에서 그 차림으로 뭘 하고 있단 말인가? 사람들의 시선은 제 각각이고 통일된 어떤 느낌도 없다. 마치 각각의 인물을 여러 그림에서 옮겨와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한 것처럼 보인다.
이 그림으로부터 현대적 의미의 회화가 시작되는데 이전 시기의 그림은 관객들이 화가가 구성해 놓은 어려 가지 이야기를 그림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이해하는 이른바 환영 주의(幻影主義) 방식의 그림(르네상스 이후)이었다면 이 그림에서부터는 화가의 그림 속의 대상물에 대한 상세한 내레이션은 사라지고 오히려 그림을 보는 관객 스스로 그림을 통해 스토리를 구성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네는 1863년 "Le Bain(목욕)'이라는 제목으로 이 그림을 살롱 전에 출품시켰다. 하지만 심사위원, 관람자와 비평가들에게 맹비난만 받은 채 낙선하고 말았다. 당시의 상황이 이런 그림을 받아주기에는 여전히 전통적 회화, 즉 화가가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는 그림이 대세였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네는 이 그림을 통해서 르네상스 이후 회화의 오랜 전통이었던 대상의 ‘재현(Representation)’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며 동시에 현대회화가 추구하는 ‘정형으로부터의 탈피’, 그 시작점에 이 그림은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논어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이면 불역군자호(不易君子乎)라는 말이 등장한다. 즉, 공자는 제자들에게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서운해하지 않는” 군자가 되라고 가르쳤으나 공자의 제자들은 공자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이 여전히 원망스러웠나 보다. 어느 날 제자들을 불러 앉혀 놓고 물었다.
“너희들이 평소에 말하기를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하는데, 만일 혹시라도 너희들을 알아준다면 어찌하겠느냐?”
이에 공자의 대표 제자랄 수 있는 자로(子路), 염유(冉有), 공서화(公西華) 등은 만승(萬乘), 천승(千乘)을 읊으며 정치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어떻게 굳힐 것인지 원대한 포부를 내세운다. 그런데 무심히 악기를 연주하던 증석(曾晳)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것이다.
“늦 봄에 봄 옷이 이루어지면 관을 쓴 어른 5, 6명과 동자 6, 7명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에서 바람 쐬고서 노래하며 돌아오겠습니다.”[논어 제 십일 선진(第 十一 先進) 25]
공자는 감탄하며 너와 함께 하겠다고 화답한다. 50이 넘은 노구를 일으켜 14년간 중원을 주유하며 무도한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실천한 이가 공자다. 그런데 이 대화는 진정 공자가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짐작케 하니 그의 행보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공자의 이런 선택에서 장자가 지목했던 “부득이(不得已)한 삶” 의 모습을 본다. 부득이 의 경지는 무엇일까? 이때 이(已)는 “그치다” 또는 “그만두다”로 해석하는 것이 어울린다. 즉 ‘제물론’에 의하면 “통함은 얻음이다.”통 야자(通也者), 득야(得也)라고 했다. 얻음(得)은 통했을 때를 말하는 것이라면 “부득이(不得已)” 즉 얻지 못했다, 혹은 얻음을 그만두다로 해석된다. 따라서 얻지 못했으니 공자는 통 할 수 없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