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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Sep 03. 2016

우리 옛 그림 이야기 1

전기의 계산포무도

 전기 계산포무도, 지본 묵화  41.4 x 24.5cm 1849.

계산포무도(溪山苞茂圖)


붓이 거칠다. 정제된 맛은 전혀 없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느낌은 머리를 파고든다. 이상한 일이다. 집을 그린 솜씨로 보면 전문 화공은 아닌가 싶다가도 나무를 그린 먹의 농담은 전문 화공보다 모자람이 없다. 글씨는 활기차고 뚜렷해서 전혀 고분고분하지 않다. 이 모든 것을 뭉뚱그려 보면 문인화가 틀림없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 전기(田琦)는 1825년(순조(純祖) 25년) 개성 전씨(開城田氏) 가문에서 태어나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다. 이 그림을 그렸을 때 그의 나이는 24세 때였는데 이 그림을 본 추사는 그를 높이 칭송했다 한다. 이런 이유인지는 상세히 알 수 없으나 추사는 전기를 매우 아꼈다고 전해진다. 호가 古藍이었던 전기는 중인 신분으로 한약방을 경영하면서 지냈기 때문에 세상에 알려 질 만한 별다른 이력이 없다. 다만 시와 그림에 능해 역시 추사의 문하생들인 우봉 조희룡, 역매 오경석 등과 가깝게 지냈다. 천재성은 누구보다 동시대 화가들이 먼저 알아본다.


'拙美'(졸미)라는 것이 있다. 서양의 미적 기준으로 보아 인정하기 어려운 미의 형태이다. 서양 예술은 균형과 조화로부터 출발해서 충만과 완벽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동양은 약간 비어있고 굽어있으며 허물어진 것에도 미적 감각을 읽어내고 가끔은 조화와 균형의 미보다 더 우위에 두기도 한다. 그것을 우리는 ‘졸미’라고 부른다. 서양인들은 19세기 인상주의 미술에 당도하고서야 비로소 이 ‘졸미’를 미적 기준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흔히 고졸하다라고 쓰는 말은 바로 졸미 중에서도 좀 더 예스럽고 소박한 멋을 이야기한다. 전기의 그림이 바로 이 고졸한 멋을 보여주고 있다. 

                                  

옆에 쓰인 글자에 그림을 그린 날짜가 7월이니(당시는 음력) 양력으로 치면 8월이다. 이제 막 가을에 접어들었는데 그림의 분위기는 대체로 황량하다. 화제(그림 제목)에 등장하는 苞는 ‘그령’이다. 그령은 다 자라야 겨우 1m 정도여서 초가집만큼 크지 않은데, 그림에서는 초가집만큼 크게 그렸다. 그령은 크령, 또는 지장풀이라고 불린다. 우리가 아는 결초보은의 그 풀도 바로 이 그령이다. 무성해 보이지 않으나 그는 역시 ‘茂’(무성하다는 뜻의 무)를 쓰고 있다. 전기는 그령을 초가 뒤에 크게 몇 그루 그려 놓고 다만 황량함과 쓸쓸함을 강조한다. 


고흐, 아를의 전망 Vue d'Arles, 1889. 독일 피나코테크 미술관

그런가 하면 소나무를 화면 가운데 세워 화면을 이등분하고 초가 반대쪽은 거의 비워두었다. 이렇게 화면 가운데 소나무를 세운 것은 매우 실험적인 구도인데 시기적으로 좀 더 뒤이기는 하지만 서양의 고흐도 이런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아를의 전망 Vue d'Arles, 1889) 이것은 다름 아닌 전기가 추구했던 삶의 모습이었으리라. 


뒤로 보이는 산은 비교적 낮다. 계산을 보는 전기 자신의 마음의 높이가 소나무처럼 높았다가 산처럼 낮아진다. 바로 이것이 이 그림의 매력인지도 모른다. 마음의 모습처럼 도저히 具顯낼 수 없는 관념의 세계를 전기는 과감한 생략과 실험적인 구도, 그리고 대담한 글씨를 모아 그림에 담아내고 있다. 계곡과 산이 어우러진 일반적인 산수화가 가지는 세련되고 풍부한 맛은 그대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 그림처럼 계곡은 도저히 가늠하기 어렵고 산은 수려할 것 같지도 않은데 문득 그림 중간에 우뚝 소나무를 그려놓았다. 왠지 지독한 슬픔이 밀려온다. 요절한 자의 슬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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