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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Sep 04. 2016

Le Joueur de fifre, 1866

무의미와 의미, 그리고 효용

Le Joueur de fifre, 1866. Oil on canvas,161cmⅹ97cm

벨라스케스가 느껴지는 

마네의 Le Joueur de fifre(피리 부는 사람) 1866.


1865년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의 스페인 여행은 마네 회화의 방향을 전환하는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된다. 그는 스페인에서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1599~1660)의 회화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게 된다. 벨라스케스의 영향은 비단 마네만 받은 것은 아니다. 벨라스케스는 회화에서 ‘빛’과 ‘색’이라는 두 요소를 중심으로 ‘묘사 방법’ 자체를 혁신하여 18세기에는 스페인의 고야, 19세기에는 프랑스의 마네와 인상주의 화가, 20세기에는 큐비즘의 피카소로부터 살바드로 달리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심지어는 영국의 프란시스 베이컨, 근대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 미셸 푸코 등 철학에 까지 영향을 미친 화가였다.


마네가 그린 이 그림 Le Joueur de fifre(피리 부는 사람)은 엄격하게 스페인 풍이라기보다는 벨라스케스 풍에 가깝다. 즉, 벨라스케스의 회화의 주인공을 마네가 그렸다는 것이 적당한 표현일 것이다. 피리를 부는 소년에서 벨라스케스의 영향은 역시 빛과 색채감에 있다. 피리를 부는 소년의 포즈는 타로 카드 조커(Fool)에서 복장만 군악대의 복장으로 바꿨는데 상의의 검은색 옷에는 명암이 없다.

 

단지 검은색의 옷이라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세부적 묘사도 없다. 뿐만 아니라 전면에 강한 빛을 받고 있어 소년의 모습이 매우 환하게 묘사된 반면 그림자는 발 뒤꿈치에 미약하나마 있고 그 나머지 그림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소년의 그림을 배경 속에 오려 붙이기 한 것처럼 보인다. 이를 두고 훗날 Emile Zola(에밀 졸라)는 이것이야말로 마네 회화의 독창성이라고 평했다.

앞선 그림 “풀밭 위의 점심식사”에서처럼 마네의 그림에서 우리는 ‘주제의 소멸’과 더불어 ‘의미의 소멸’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마네 이후 이어지는 현대회화의 큰 흐름이 되는데, 그 흐름은 그림으로부터 이야기를 읽어 내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가 그림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이 그림과 풀밭 위의 점심식사의 또 다른 공통점은, 풀밭 위의 점심식사에서 누드로 앉아있는 여성과 피리를 불고 있는 이 소년은 동일한 인물인 Victorine Meurent(빅토린 뫼랑)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뫼랑은 마네가 그린 여러 작품의 모델이었는데 마네 회화의 기념비적 작품 Olympia(올랭피아, 1863)의 모델이기도 하다.


피리를 부는 소년의 자세는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화가 SandroBotticelli(보티첼리)의 비너스에서 보듯 한쪽 다리에 중심을 실은 이른바 Contraposto(콘트라포스토) 자세를 하고 있다. 콘트라 포스토 자세는 BC 5세기에 활동한 그리스의 조각가 Polykleitos(폴리 클레이토스)에 의해 처음으로 시도되었는데 종전까지 엄격하게 지켜지던 조각상의 정면 차렷 자세의 전통에서 벗어나는데 크게 기여했다. 콘트라포스토의 방법을 이용함으로써 이전까지의 조각이 가지고 있던 단조로움과 경직성에서 벗어나 인체의 조각에서 미적인 감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방법이 되었다. 피리 부는 소년의 한 발은 약간 앞으로 나와 있고 그 뒤쪽 발에 체중이 실림으로써 소년을 보는 관람자인 우리는 한결 안정된 느낌과 함께 그림 속에서 소년으로부터 가벼운 역동성 조차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장자 이야기


무의미와 의미, 그리고 효용


설결(齧缺)이라는 사람이 왕예(王倪)에게 4가지 질문한 것에 대하여 왕예가 4가지 모두 모른다고 하는 것, 그리고 설결은 그것을 듣고 매우 기뻐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듣기에 매우 이상한 일이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을 뿐인데 그 이야기를 듣고 기뻐한 것이 과연 지금의 상식에 맞는 일인지 의문이 간다. 물론 참 깨달음을 위해 정진하라는 숨겨진 뜻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설결이 물은 내용을 장자는 말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대답이 필요 없는 것이거나 아니면 모른다는 답이 맞을 만큼 알 수 없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현재의 기준으로 본다면 설결의 질문 행위는 ‘무의미’ 그 자체인데 여기서 우리의 ‘무의미’에 대한 중요한 선험적 구분이 작동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무의미’와 ‘의미 있음’에 대한 우리의 구분이다. 우리는 ‘의미 있음’에 모든 가치를 두려고 한다. 동시에 의미 없는 시간이나 행위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교육받았고 무엇이든 의미 있는 일을 하도록 늘 교육받아왔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의미’ 있다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기준은 모호하거나 혹은 매우 다양하다. 개인마다 집단마다 모두 이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장자도 바로 이 문제에 집중한다. 즉, 무엇이 의미 있고 또 의미 없는 가에 대한 기준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왕예가 모른다고 대답한 것은 그 ‘의미’의 기준을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장자적 표현인데 무의미(無意味)가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넘어섰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순간이다. 

장자 응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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