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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Sep 05. 2016

Prologue

오르세의 그림과 장자적 명상

만약 시간을 거슬러 장자라는 실존 인물이 현재의 서양의 미술관에 걸린 그림을 본다면 어떤 느낌으로 그것을 감상하게 될까? 나의 이야기는 바로 이 재미있는 상상에서 비롯되었다.


여러 해 동안, 전혀 다른 두 세계에 대한 주제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강의해 왔다. 두 세계는 바로 동양의 장자와 서양 미술에 대한 것이었다. 장자 강의는 『장자』라는 책으로 엮어진 내용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강의의 핵심이었다. 이러한 장자 강의의 핵심은 한문으로 된 장자 원전을 좀 더 정교하게 한자(漢字)로 이해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그러기 위해서 한 줄 한 줄마다 해석을 가하는 다소 무리가 있는(자칫 전체적인 것을 보지 못할 수 있는 위험조차도 있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그 방법을 택한 이유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서점에 있는 장자라는 책의 내용은 한문으로 된 원전(原典)이 단락별로 등장하고 그 원전의 내용을 번역한 내용이 다른 페이지에 서술되는 방식으로서 각 한자(漢字) 한 글자 한 글자가 어디에 어떻게 대응되는 것인가를 찾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서점에 있는 장자들은 번역가의 번역으로만 된 한글 책으로 변해 원저자인 장자의 생각보다는 번역자의 생각이 좀 더 많이 영향을 미치는 번역자의 책으로 변하고 말았다. 


물론 내용이나 의미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수강자들과 함께 한자(漢字) 한 글자, 한 글자를 해석하고 음미하는 과정은 매우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 이를테면 장자라는 위대한 존재가 추구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번역가의 생각보다는 원전에 가까운 각자의 느낌으로 이해하는 과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장자 내편을 공부하면서 강의하는 나와 수강자들의 내공은 아마 조금 깊어졌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또 한편으로는 서양의 유명한 미술관에 걸려 있는 작품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강의를 또 다른 사람들에게 병행하였다. 장자보다는 오래된 내용은 아니었지만 서양문명의 몇 개의 분기점(기독교의 발생과 전파, 중세, 르네상스, 종교혁명, 산업혁명, 근대화, 현대화)을 중심으로 그 시기마다 펼쳐진 서양인들의 미적 감성이 그대로 녹아있는 미술 작품들을 하나하나 감상하고 그 속의 여러 가지 알레고리와 이야기들을 전해 주는 작업은 강의하는 사람에게나 또, 강의를 듣는 사람에게나 모두 흥미로운 과정이었다.


교사인 나의 직업적 특성, 개인적 품성 그리고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 이 맞아떨어진 미술 이야기는 장자 이야기만큼이나 매력적인 것이었는데 두 개의 이야기를 조금씩 조금씩 하다 보니 스스로 두 세계에 걸쳐진 이야기들을 만들어 보고 싶은 주제넘은 욕망에 사로 잡히게 되었다. 장자적 이야기의 핵심은 장자가 살았던 시대의 난관(難關) 극복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론이다. 어떻게 하면 어려운 시대에 목숨을 보존하면서도 동시에 인간답고 또 좀 더 깊은 생각의 자유를 추구할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백록이 장자의 내용이다. 그런가 하면 서양의 그림들은 각 시대를 살아온 화가들의 다양한 미적 탐험과 영원한 신성(神性)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추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형상화하여 나타낸 것이다. 


두 세계의 출발과 과정, 지향점과 확산 방식은 너무나 다르지만 그 속에 녹아있는 인간 의지의 끝없는 목적 지향을 위한 추구(追究)의 정신은 동일한 것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장자를 강의했던 비슷한 시기에 서양 미술관 순례는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을 여행하고 있었다. 오르세 미술관의 그림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장자를 떠 올렸고, 장자의 내용을 한 글자, 한 글자 설명하면서 오르세 미술관의 그 화려한 미적 탐험을 떠 올렸다.  그러한 과정 사이사이 스스로 해 두었던 장자적 사유에 대한 메모를 그림의 간단한 설명과 함께 같이 묶어 보았다. 그림을 보는 즉시 떠 오른 장자적 사유이므로 어떤 논리적 연계나 연역적 혹은 귀납적 연결고리를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연계를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면, 아마도 나는 단 한 줄의 장자 이야기를 그림의 뒤에 놓지 못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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