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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May 0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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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 제이크 질렌할, 베라 파미가 


2014년 세월호 사건이 나고 난 뒤 2011년 개봉되었던 이 영화를 다시 떠 올린 기억이 난다. 아이들은 이 쪽 세계와 단절되고 우리가 알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수학여행을 잘 다녀오고 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는 22살의 청춘들로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나’는 실체의 ‘나’와 완전히 합치하는가? 아니면 다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또 다른 ‘나’의 寫像(사상)인가? 혹은 나의 寫像(사상)이 또 다른 공간에 존재하고 있는가? “양자역학”이라는 버거운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 번쯤 상상해 볼만한 이런 가설은 우리 삶이 가끔 무료해지거나 곤혹스러워질 때 우리 삶이 살만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 


영화는 몇 개의 가정에서 출발한다. 실체적 ‘나’와 가상공간에서 轉寫(전사)된 ‘나’ 사이를 이어주는 것은 “소소코드”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존재하고, 그 프로그램을 통해 전이되는 것은 ‘뇌파’(즉 신호화 또는 부호화할 수 있는 신호)이다. 그 신호를 감지하고 신호를 읽어내는 또 다른 컴퓨터를 통해 인간의 뇌파는 시간과 공간을 옮겨 다닐 수 있으며 특정 시간, 특정 인물로 신호화된 뇌파가 전이된다. 동시에 그 과정을 이어주고 통제하는 제삼자(조정자)가 존재하고 이동되는 존재는 이 제삼자의 통제를 받음과 동시에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실제로 뇌파를 통한 의사소통이 가능한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의 무의식 속에 이루어지는 엄청난 작용을 가만해 보면 이런 방식의 동작도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희미한 기대가 아마도 이 영화의 흡인력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평행이론의 핵심은, 시간 여행의 근거가 되는 다른 여러 이론과는 달리 시간여행의 패러독스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평행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서로 다른 두 세계이기 때문에 설사 두 세계가 연결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각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행동의 변화로 인지될 뿐이다. 따라서 하나의 세계에서 동일한 시간대를 옮겨 다니는 기존의 시간여행과는 차이가 있다. 즉, 기존의 시간여행은 동일한 타임라인 위에서 원인과 결과, 그리고 전과 후가 뒤섞여 마치 뫼비우스 띠처럼 정작 지금의 현실이 모순이 되어버리는 시간여행의 역설이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평행이론에서의 두 개 혹은 여러 개의 공간은 마치 기차의 레일에서 침목처럼 특정 장치(이 영화에서는 소스코드)로 연결되어 있더라도 두 레일은 끝없이 평행하여 이어져 서로를 간섭하지 않으며 동시에 타임라인의 혼돈 역시 일어나지 않게 된다. 


이 영화에서도 두 개의 세계에 소스코드로 전사된 이쪽 세계의 인물의 행동들이 저쪽 세계와 관련되어 있다가 이 세계에서 주인공의 정지(죽음, 뇌파의 정지)되는 순간, 하나의 차원(세계)은 즉각 폐쇄되고 동일한 인물이 다른 차원의 세계에 처음부터 있었던 것처럼 완전한 일원이 되어버리는(그리고 그 세계에서는 그가 이쪽 세계의 존재라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완벽한 균형) 상태가 된다. 이러한 설정을 영화에서는 매번 같은 소스코드를 통한 차원이 다른 세계의 이동 단계 상황에서 상대 여자 주인공의 대사가 달라짐으로써 시간대를 휘젓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새로운 사건의 연속인 것처럼, 결코 그 세계의 삶에 혼선을 주지 않는 새로운 상황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간(공리적인 힐베르트 공간이든 아니면 철학적이며 선험 혹은 학습된 공간이든 막론하고) 속에 존재하는 좌표의 이동 점을 Y축에 평행(시간의 분리)시켜 개인적 꿈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 영화 인셉션이라면, 이 영화는 횡축 중심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X축에 평행하는(공간의 분리) 평행이론과 양자역학의 다중 세계론에 부합하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몇 가지 미장센들이 관람객의 이해를 도와준다. 소스코드로의 轉寫(전사) 장면에 반드시 등장하는 새의 비행, 수면 위의 움직임은 평행이라는 개념과 관련이 있을 것이고 기차라는 특수 공간 역시 동일한 시간 속에서 일정 공간을 이동하는 장치로서 소스코드를 통한 공간 이동을 객체화시킨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또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거울 모양의 거대 구조물에 비치는 주인공의 모습(영화 중간에는 자신의 모습이 아닌 얼굴로 보여 짐)은 이미 저쪽 세계에 소속되어버린 것을 암시하는 미장센이라 볼 수 있다. 그 외 여러 개의 정지 장면은 두 세계의 공간적 시간적 단절을 함의하고 있는 중요한 영화적 장치라고 여겨진다. 


사족 : 언제나 그렇듯이 해피엔딩에서 영화적 무게를 떨어뜨리는 미국 영화, 하지만 제이크 질렌할이라는 배우의 완숙한 연기와 한정된 공간과 단일한 복장의 한계를 떨쳐버린 베라 파미가(굿윈 역)의 연기는 매우 인상적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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