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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May 07. 2018

아카시아

應會(응회)* 


當考玄妙覺 (당고현묘각) 문득 현묘한 깨달음을 생각해보니, 

無爲無不爲 (무위무불위) *이루지 않음은 이루지 않음이 없음이라. 

原來無別事 (원래무별사) 본시 별 일 없었으니, 

綠葉百花聚 (녹엽백화취) 녹색 잎, 흰 꽃 떨기인 것을. 


* 應會 : 중국 서진(西晋)의 문인인 육기(陸機)의 [문부(文賦)]에 등장하는 말로서 ‘와도 막을 수 없고, 가도 붙들 수 없는’ 돌발적인 만남을 말한다. 


* 도교 철학의 근본 교의. 아카시아에 비유한다면 화려하고 오묘한 향기를 만들어 냄은 결국 무위다. 하지만 이 무위가 유위의 목적(꽃이 가진 본성, 즉 결실을 통한 번식)을 실현하다.  


아카시아 꽃 향기 


5월의 밤, 향긋한 아카시아 향기가 어디에선가 날려와 내 코를 자극한다. 향기를 음미해보면 달콤함 끝에 약간은 비릿한 부분도 있다. 어쩌면 밤꽃 향기와 섞였을 수도 있다. 아카시아 향기를 느끼며 시를 쓰고 또 그에 따르는 생각을 몇 자 적어 본다. 


향기의 한자 香은 벼 화(禾)와 달 감(甘)의 뜻이 합쳐진 회의 문자다. 벼 꽃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 이를테면 농경문화에서 핵심 곡물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과 확대 재생산의 상징으로서 꽃, 그것으로부터 유래되는 수확과 충족에 대한 기대감, 그리하여 유추될 수 있는 만족감과 행복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감(甘)은 문자 그대로 생각할 수 있는 달콤함, 그리고 달콤함에서 비롯되는 모든 행복한 느낌들이 망라된 의미가 결합되어 香이라는 글자가 탄생하였을 것이다. 관념적인 이미지와 구체적 미각이 또 다른 감각인 후각으로 전이된 것은 우리의 5감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감각이란 구체적인 감각은 물론, 관념적인 감각도 개입된 총체적인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眼, 耳, 鼻, 舌, 身으로부터 번뇌가 시작된다는 불교의 가르침이 문득 이해되기도 한다.  


아카시아는 아까시아로 쓰는 것이 맞다.(여기서는 그대로 아카시아로 쓴다.) 열대 지방에 자라는 아카시아가 따로 있다. 원산지는 북아메리카이다. 1900년 초에 황폐지 복구용 또는 연료용 목재로 들여와 전국에 식재된 귀화식물이다. 일제시대 우리나라 사방공사에 이 나무를 많이 심어 한때 아카시아는 우리나라 삼림을 망치기 위해 일본이 일부러 심은 것이라고 알려졌고 실제로 그 뿌리가 너무 깊어 한 번 아카시아가 퍼진 땅에는 다른 식물이 자라기 어렵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아카시아는 콩과 식물로 뿌리에는 질소 고정의 역할을 하는 박테리아가 있어 그나마 오늘날 대한민국의 산야에 영양분을 공급하여 삼림 복원에 공헌한 식물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 이 글의 주제인 아카시아 꽃은 蜜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꿀이 바로 아카시아에서 나온 꿀이다. 


아카시아 향은 매우 달고 푸근하다. 꽃 향기를 구분하는 용어로 푸근하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지 몰라도 아카시아 향기는 푸근하다는 말보다 적합한 용어를 찾기는 어렵다. 꽃 향기 중 어떤 것은 날카롭고 또 어떤 것은 둔중하다. 평면적인 향기와 입체적인 향기로 구분되는 향기에 대한 형용사는 매우 창의적인 사고와 연결되기도 한다. 어쨌거나 아카시아 향기는 달콤하다. 달콤함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미각적인 달콤함과 마찬가지로 우리 뇌에 특정 부분을 자극하여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이 아카시아 향기다. 


아카시아 향기가 나의 뇌에서 이러한 작용을 일으키기까지의 단계는 이러할 것이다. 아카시아라는 꽃이 나에게 현상이 되는 최초의 순간(現象이란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사물의 모양과 상태로 본다.)은 후각에 의한 것이다. 후각으로 시작된 감각의 다음 단계는 시각이다. 이미 향기라는 것에 구체적 실체가 접합되어 향기로부터 구체적인 실상을 탐색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선험(이미 학습된)으로 저장된 아카시아 꽃이 나에게 주는 다양한 신호(예를 들면 아카시아 꽃 모양에 중첩되어 기억된 향기)에 따라 후각으로 인지된 감각 위에 또 다른 새로운 감각이 더해지는 것이다. 이 기막히고 짧은 순간 동안에는 오로지 아카시아 꽃에게만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지각된 아카시아에 대하여 나는 탐색의 결과로 보이는 아카시아 꽃의 상태를 파악하게 된다. 즉, (이전 연도와 비교하여, 혹은 이전의 특정 시기와 비교하여) 꽃의 색깔, 꽃의 개화 정도, 향기의 농후 정도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현재의 상황을 그 위에 중첩시키게 된다. 더불어 새로운 의미 부여를 시도하게 된다. 


길어야 1초도 걸리지 않지만 이러한 지각의 배후에 존재하는 다양한 선험의 공간은 우주보다 넓고 깊으며 영원하다. 하지만 그 넓고 깊으며 영원한 세계와의 조우는 너무나 다양한 크기와 깊이를 가지고 있다. 그 크기와 깊이의 개인 차는 어마어마하여 부처와 같은 존재가 있는가 하면 나와 같은 존재도 있다는 것이다. 하여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고 좌절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단순한 아카시아 향기에서 우주의 질서를 보는가 하면 그저 달콤함에 잠시 행복해하는 나의 모습도 있다.  

아카시아 흰 꽃과 더불어 붉은 모란꽃이 번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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