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모습, 그리고.....
밤이 되니 개구리울음 소리가 가득하다. 이렇게 여름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월요일이 소만이다. 소는 짧음을 뜻하고 만은 물이 가득하다는 뜻이니 봄비가 많이 내려 모내기에 적합한 짧은 시기로 풀이될 수 있다. 소만이 지나면 이제 씨 뿌리기를 끝내라는 망종이 있다.
날씨가 더워지면 마음이 흩어지기 쉽다. 비록 가벼운 자본의 세상에 매일을 버티고 있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깊고 당당하며 태산만큼 무거워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그 마음의 모습에 대한 장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장자 덕충부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노나라에 발이 하나인 왕태라는 자가 있었다. 그를 따라서 노니는 자들이 중니(공자)와 견줄 만큼이다. 상계(공자의 제자는 아님)가 중니에게 물었다. “왕태는 다리가 하나뿐인 사람인데 그를 따라 배우는 자들이 선생님과 함께 노나라를 반분하고 있습니다.
그는 서서 가르치지도 않고 앉아서 논의하지도 않지만 비어서 갔다가 가득 차서 돌아옵니다. 왕태에게는 말로 하지 않는 가르침이 있어서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서도 마음을 채우는(덕충)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중니가 말하였다. “그 사람은 성인이다. (나)도 단지 미루다 보니 아직 찾아가지 못했을 따름이다. (나)도 스승으로 삼으려고 하는데, 하물며 (나) 보다 못한 사람들이야! 어찌 노나라에만 이를 것인가! (나)는 장차 천하 사람들을 이끌고서 함께 그를 따르려고 한다.”
상계가 말하였다. “저 사람은 다리가 하나뿐인데도 선생님보다 훌륭하다고 하니, 그 사람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겠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 마음가짐을 어떻게 지니고 있습니까?"
중니가 말했다. “죽고 사는 것 또한 큰 일이지만 그에게 변화를 주지는 못한다. 비록 천지가 개벽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변화를 주지는 못할 것이며, 참으로 진실한 것을 깨달아 사물과 함께 옮겨 다니지 않으며, 사물이 변화하는 것을 명으로 받아들여 그 근본을 지킨다.”
상계가 말하였다.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중니가 말하였다. “다르다고 보면 간과 쓸개도 초나라와 월나라처럼 멀고, 같다고 보면 만물도 모두 하나이다. 무릇 이 같은 자는 보고 들음에 옳다고 하는 바를 알지 못하고 덕이 조화되는 곳에 마음을 노닐게 한다. 사물에 대해서는 그 하나 되는 바를 보되 아닌 바를 보지 않으니 그 발 하나 잃는 것은 흙을 털어버리는 정도로 여긴다.”
상계가 말하였다. "그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신만의 지혜로 자신만의 마음을 터득하고 자신만의 마음으로 평안한 마음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에게 모이는 것입니까?”
중니가 말하였다. “사람은 흐르는 물을 거울삼을 수 없고 오로지 멈추어 있는 물에서 거울을 삼을 수 있다. 멈추어 있는 것만이 장차 멈추려고 하는 것들을 멈추게 할 수 있다. 땅에서 생명을 받은 것으로는 오직 소나무와 잣나무 만이 홀로 겨울이나 여름에도 푸르다. 하늘에서 생명을 받은 것으로는 오직 요와 순만이 홀로 올바르기 때문에 만물의 높은 자리에 있게 되었고 능히 자신의 생명을 바로 함으로써 사람들의 생명을 바르게 할 수 있었다."(무슨 말인지 해석하고도 헷갈린다.)
무릇 처음을 잃지 않고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참이다.
용감한 병사가 홀로 적의 군대 속으로 들어간다. 장차 이름을 얻고자 하는 자도 이와 같이 하는데, 하물며 천지를 조용히 보고하고 그 모든 만물을 품어, 몸은 단지 잠시 머무는 곳으로 여기고,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것을 빈 것으로 여기며, 알고 있는 바를 늘 바르게 실행하니 이는 마음이 죽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 사람은 곧 삶과 죽음을 넘는 경지에 오를 것을 사람들이 알기 때문에 비록 다리 하나가 없어도 사람들은 그를 따르는 것이다. (공자를 내 세워 장자가 하고 싶은 말)
마음, 늘 마음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