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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un 03. 2018

범위의 문제

장자 제 17 편 추수(秋水), 그리고 범위의 문제 


장자 제 17 편 추수에는 황하의 신 하백(河伯)과 북해의 신 약(若)의 대화로 시작한다. ‘하백’이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타파하기 위해 북해의 신 ‘약’의 가르침을 받는 내용이다. 이를테면 자신의 범위를 넘어서는 과정이야말로 도를 이루는 과정일 것이라고 ‘장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제목 추수는 글의 첫 부분을 인용한 것으로서 별 다른 함의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 통설이다. 


추수 첫 부분은 이렇게 시작된다. 


가을이 되자 물이 불어나 모든 물이 황하로 흘러들어 출렁이는 물결의 광대함이 양쪽 기슭에서 건너편 물가에 있는 소와 말이 구별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렇게 되니 황하의 神 河伯은 欣然(흔연 - 기쁘거나 반가워 기분이 좋다.)하여 천하의 아름다움이 모두 자기에게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흐름을 따라 동쪽으로 흘러가서  北海에 이르러 동쪽을 바라보았더니 물의 끝을 볼 수 없었다.  

이렇게 되자 河伯이 비로소 그 얼굴을 돌려 멍한 눈으로 北海의 神 若을 바라보고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세간의 속담에 이르기를 ‘道에 대해 조금 들었다고 세상에 나만 한 사람이 없다고 우쭐댄다.’고 했는데 바로 나 같은 사람을 두고 한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일찍이 仲尼의 見聞을 적다 하고 伯夷의 義로운 행동을 가벼이 여기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내가 그것을 믿지 않았더니만, 지금 나는 그대의 끝을 헤아리기 어려운 廣大함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내가 당신의 門에 이르지 않았던들 위태로울 뻔했습니다. 나는 〈하마터면〉 大道를 깨달은 사람들에게 길이 비웃음을 당할 뻔했습니다.”  

北海若이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없는 것은 자신이 머무는 공간에만 얽매여 있기 때문이며, 여름 벌레에게 얼음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없는 것은 자신이 사는 때에만 얽매여 있기 때문이며, 曲士(곡사 – 생각이 비뚤어진 선비)에게 道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없는 것은  자기가 알고 있는 敎理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대는 황하의 양쪽 기슭 사이에서 벗어나 큰 바다를 보고 마침내 그대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알았으니, 그대와는 함께 커다란 道理에 관해 이야기할 만하다.” 

생각의 범위 문제는 ‘장자’ 이야기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동서고금 모든 철학의 핵심은 바로 이 ‘생각의 범위’를 타파하고 넘어서는 문제일 것이다. 근대 철학 발전의 시작점에 있는 위대한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는 그의 책 방법서설(Discours de la méthode pour bien conduire sa raison, et chercher la verité dans les sciences, 1637)에서도 이 범위의 문제를 넘어서기 위한 나름의 규칙을 제시한다. 방법 서설의 제 2부 The principal rules of the Method which the Author has discovered(데카르트가 찾아낸 학문 방법의 주요 규칙) 그가 찾아낸 방법의 규칙은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 결코 진리라고 명확하게 증명되지 않은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진리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다. 이 규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명증(명확한 증명)과 판명(그로부터 확연히 구분되는)이다. 


명증은 간접적인 추리에 의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진리임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즉 직관적으로 진리임을 인지할 수 없거나, 그것이 진리라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면 진리가 아닌 것이다. 직관적으로 진리임을 알기 위한 선결요건은 진리는 언제 어디서나 불변하는 동일성을 가져야 한다. 진리의 동일성이 내포되어 있어야만 명증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판명은 분명하고 명확하게 나눌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명확하게 나눠지지 않는 애매모호한 것들은 진리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두 번째, 검토 대상인 각각의 명제를 더욱 잘 해결하기 위해 가능한 한 잘게, 필요한 만큼 나누라는 것이다. 어떤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서 검토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치 화학에서 가장 작은 부분인 원자로부터 검토를 시작하는 것과 같다.

 

세 번째, 생각을 질서 있게 인도하라는 것이다. 즉 가장 단순하고 인식하기 쉬운 대상에서 시작하여 조금씩 점진적으로 가장 복합적인 것들에 관한 인식에 도달하고 자연적으로는 서로서로 전혀 앞선다거나 뒤선다거나 하지 않는 것들 중에라도 이러한 선후 질서를 상정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데카르트의 합리론, 즉 연역적 방법론이 등장하게 된다. 계단을 오르듯이 이어지는 논리 증명의 방법은 이 후 서양 세계의 학문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네 번째, 하나도 빠트리지 않았다고 확실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완전하게 열거하고 일반화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검토하라는 것이다. 완전한 열거와 검토만이 체계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의 세계에 도달 가능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장자’의 생각과 ‘데카르트’의 생각은 그들이 살았던 시대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 거리가 수직적이 아니라 수평적인 것이라는데 적지 않게 놀라게 된다. 즉, 큰 그림으로 이해한다면 용어나 논리구조, 비유와 형식은 차이가 있지만 본질에 있어 범위의 확장을 위한 철저한 탐구와 반성의 이미지는 비슷해 보인다.  


저 유명한 우물 안 개구리의 비유가 바로 이 추수 편에 등장한다. 여전히 우물 안에서 세상을 보는 나는, 과연 내 삶이 다하는 순간 이전에 우물 밖의 세상을 보기나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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